법인 카드로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7000만원가량을 결제해 교육부가 중징계를 요구한 고려대 교수 12명 가운데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 대사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감사는 지난 1~2월에 진행됐고 고려대가 개교 115년 만에 처음 받은 교육부 종합 감사였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유흥주점에서 2016년부터 4년간 221차례에 걸쳐 6693만원을 연구비 카드와 행정용 카드를 사용해 중징계 대상이 된 12명의 교수는 당시 경영대 교수였던 장하성 대사를 비롯해 경영대 교수 등과 기획예산처장 등 주요 보직을 지낸 교수들이다.
장하성 대사는 2005~2010년 고려대 경영대학장을 3연임했고, 2010년 총장 선거에 출마해 상위 3명의 최종 후보자로 추천됐지만 자진 사퇴했다. 2017년 5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됐고, 지난해 고려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이에 따라 장 대사에 대한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는 ‘불문(不問·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처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주중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장 대사 측에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고려대 주변에서는 “장 대사가 유흥주점에 직접 가지 않고 법인카드를 빌려준 것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럴 경우라면 중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정 유흥주점 1곳에서 4년간 벌어져
교육부 감사 결과 처분서에는 이 유흥주점에 대해 ‘서양 음식점으로 영업 신고가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양주 등을 판매하고 별도 룸에 테이블, 소파, 노래방 기기를 갖췄고 여성 종업원이 손님 자리에 착석하여 술 접대 등을 하는 유흥업소’라고 돼 있다. 서양 음식점이라고 신고돼 있지만, 실제로는 룸살롱식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86차례에 걸쳐 총 2487만원을 결제한 A 교수는 현재 한 단과대의 학장을 맡고 있다. 대학 본부에서 주요 보직을 맡기도 했다. 12명의 교수 가운데 2명은 학교 예산을 총괄하는 보직인 기획예산처장을 지냈다. 이런 교수들이 교비 회계에서 지출되는 학교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쓴 것이다. 문제의 유흥주점에서 결제한 카드 사용 명목은 ‘업무협의 관련 급식비’ ‘행정제도 개선 사업비’ ‘전임교원 연구활동비 지원’ 등이었다.
고려대 안팎에서는 “학교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고려대 교수는 “오랫동안 묵었던 문제가 교육부 감사에서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고려대 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교육부 감사를 통해 밝혀진 문제에 대해 구성원에게 사과하라’ 등 4가지 사항을 학교 측에 요구한 상태다.
◇결제 금액 낮추려 91번이나 ′쪼개기 결제'
교육부에 따르면, 고려대 교수들은 결제 금액을 낮추려고 법인카드 2장을 이용해 ‘쪼개기 결제’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12월 18일 밤 이 업소에서 행정용 카드로 48만7000원, 연구비 카드로 23만3000원이 결제됐다. 2분 19초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결국 72만원인 술값을 40만원대와 20만원대로 나눈 것이다. 이런 식으로 2~4회 번갈아가며 쓴 분할 결제가 총 91회(2625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는 해당 교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기를 꺼놓거나 받지 않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고려대는 “해당 교수들에 대한 징계 여부 등은 논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부적절한 회계 집행은 환수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