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5시 50분쯤 서울 강동구 한 마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은 한 40대 남성이 계산원에게 폭언하고 손에 들고 있던 떡볶이, 순대, 김밥, 과일 등을 집어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마트 직원 정명훈(42)씨에 따르면 계산원이 “마스크를 써달라”고 하자 이 남성은 “내가 손이 없는데 마스크를 어떻게 쓰냐”면서 마트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 이거나 처먹어” 등 욕설도 퍼부었다고 한다. 봉변을 당한 계산원은 심신의 안정이 필요해 잠시 가게를 쉬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감염증 확산 초기인 2~3월에는 재택근무 및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른바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앵그리’ 현상이 확산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감염증 확산 초기인 2~3월에는 재택근무 및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른바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앵그리’ 현상이 확산하는 것이다.

16일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올해 3·5·9월 3회에 걸쳐 코로나와 관련한 국민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민이 느끼는 종합적인 ‘불안’ 지수(21점 만점)는 3월 5.33에서 9월 5.22로 낮아졌다. ‘불안’의 하위 7개 항목 가운데서도 ‘초조와 불안’ ‘걱정이 많음’ 등 6개는 3월보다 낮아졌지만, 유일하게 ‘짜증과 화(火)’ 지수만 9월 조사에서 3월 대비 증가했다.

‘코로나 분노’는 코로나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경기 안산에 사는 신모(28)씨는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2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친구와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친구가 “남자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며 자랑스럽게 비싼 음식, 숙박한 고급 호텔 등 사진을 보여준 걸 보고 울컥했다. 신씨는 “평소였으면 그냥 부럽다 하고 말았을 텐데…”라고 했다. 그는 지난 2월, 다니던 화장품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생활비는 PC방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그러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됐고,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다. 신씨는 “직장 취업 준비하기도 벅찬 상황에 알바 자리까지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짜증스럽다”며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수원 영통구에 사는 박모(39)씨는 최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산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유치원 강사로 일하던 박씨는 코로나 때문에 휴원이 이어지자 1년간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아들딸을 돌보고 있다. 박씨는 “아이들 삼시 세끼는 물론이고, 온라인 수업이 부실하다 보니 공부도 봐주고, 산책까지 시켜야 하는 지경”이라며 “피로가 쌓여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친다”고 했다.

코로나 폭력도 빈발한다. 12일 새벽 2시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주점에서는 20대 여성 손님이 “QR 코드를 보여달라”는 남성 직원의 급소를 무릎으로 걷어찼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선 QR 코드 입력과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직원에게 손님이 커피를 집어 던졌다. 8월에는 서울 지하철에서 주변 승객으로부터 마스크 착용을 요구받은 50대 남성이 갑자기 화를 내며 주변인들 목을 조르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얼굴을 때린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집단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분노’ 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 이후 초기에는 부정적 감정으로 ‘불안’이 지배적이다가, 스트레스가 지속하면 ‘분노’와 ‘우울’이 증가하는 것이 통설”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감염병 발발 초기에는 불안이 주된 정서였고, 이후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및 재택근무 등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코로나 블루’가 팽배했다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탓을 돌리는 ‘분노 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을 물속에 담그면 자기도 모르는 새 서서히 붓다가, 나중엔 퉁퉁 불어난다”며 “피로감의 누적 효과가 생각보다 큰 상황에서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부 차원의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