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 이모(47)씨의 월북 증거로 제시됐던 슬리퍼가 사실상 ‘공용(共用)’인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인천 연수구 해경 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해경 윤성현 수사국장은 “이씨가 근무했던 무궁화 10호에서 발견된 슬리퍼에 대한 국과수 감식 결과 여러 사람의 DNA가 발견돼 실종자의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윤 국장은 “실종자가 해당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동료 2명의 진술이 있었다”며 이씨의 슬리퍼로 특정했다. 해경은 또 이 씨가 사용했던 무궁화 10호 컴퓨터 포렌식 결과 월북으로 추정할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해경은 이날 “실종자 이씨가 최근 15개월 동안 591회에 걸쳐 도박 자금을 송금하는 등 인터넷 도박에 깊이 빠져 있었고, 동료와 지인 30여명으로부터 꽃게를 사 주겠다며 받은 꽃게 대금까지 도박 자금으로 썼다”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해경은 “이씨가 지난 9월20일 오후 11시40분 마지막 당직 근무를 시작했는데 근무 한 시간 10분 전인 20일 오후 10시28분에도 도박 계좌로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윤 국장은 “'도박은 마약보다 무섭다. 도박하는 사람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말이 있다”며 “도박 빚이 있다고 월북한다는 점에 의문을 표하는 국민이 많지만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본다”는 해석까지 내놓았다.
해경은 “이씨의 도박 자금은 1억3000여만원이며, 꽃게 대금은 730만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경은 지난 달 29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 때에는 이씨의 총 부채가 3억3000만원이며 이 중 2억6800만원이 인터넷 도박으로 생긴 빚"이라고 했었다.
해경은 또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붉은 색 계열의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실종자의 침실에 총 3가지 형태의 구명조끼가 있었으며, 이 가운데 B형(붉은 색) 구명조끼가 사라진 것으로 미루어 실종자가 B형 구명조끼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경은 무궁화 10호 구명조끼에 대한 정확한 관리가 되지 않아 특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해경은 이씨가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는 유족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씨는 지난 9월20일 어선 검문검색 때도 안전화가 아닌 붉은 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는 것이 단속 카메라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며 “해당 운동화는 이씨가 머물렀던 선실에 있었다”고 밝혔다.
해경은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없는 수색이 계속된다는 지적에 대해 “수색은 계속하지만 방법에 대해선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씨의 형 이래진(55)씨가 요청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서는 “국방부 등 관계 당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래진씨는 이날 연평도 사고 현장 방문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현장을 방문한 뒤 실족사라는 근거를 얻었고, 조만간 북에 의한 총살도 아닌 심정지, 익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공개할 것”이라면서 “해경을 믿고 신뢰했는데, 사람을 매도하는 수사기관 단체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래진씨와 동행한 국민의 힘 하태경 의원은 “기획 월북을 했다는 근거들이 모두 괴담”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그분을 대한민국 정부가 명예살인했기에 대통령은 그분에 대한 명예를 지켜주는 것으로 속죄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