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국민 72% “전기요금 인상도 수용”’ 보도 내용을 두고 전문가들은 “설문지 설계가 잘못됐다”는 의견을 내놨다. 70문항 가까이 기후변화에 대한 의견을 묻던 중 느닷없이 ‘수용 가능한 전기 요금 인상 정도’에 대한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 ‘월 2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선택지가 없어 범위가 너무 좁다는 지적도 나왔다.
KBS는 지난 2일 ‘[기후변화, 위기를 기회로]① 국민 72% “전기요금 인상도 수용”…여러분의 생각은?’라는 온라인 기사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9시 뉴스에 ’10명 중 7명 “전기료 인상 수용”…"기후 대응은 경제에 도움"'이라는 방송용 리포트를 내보냈다. KBS와 그린피스가 공동 기획한 ‘기후위기 관련 시민 인식조사’의 결과를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2030년까지 국내에서 퇴출을 완료해야 한다'는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다” “석탄을 대체할 에너지원에 대해 국민 넷 중 한 명은 태양광을 꼽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문제는 그중 제목으로 꼽힌 ‘국민 10명 중 7명 “전기료 인상 수용”’에 대한 설문 조사 과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전기요금 상승에 대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19.7%, “수용할 수 있다”는 71.8%로 요금 상승을 감내하겠다는 답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KBS가 인터넷 기사 말미에 첨부한 설문결과표를 보고는 “설문 조사법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설문조사 원칙 중 하나는 각각 질문들이 최대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KBS 설문조사 중 ‘온실가스 감축 촉진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을 얼마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74번째로 나온다. 그 전까지의 질문은 ‘기후위기의 심각성 정도’ ‘주체별 기후위기 대응 노력’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 상향에 대한 생각' 등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문항을 70개 정도 답변하고 전기요금 상승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응답자는 ‘기후위기가 이정도로 심각한데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설문조사를 하면 각각 질문들을 연계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야 좋은 설문지”라며 “(KBS의 설문지는)객관성을 담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답변 범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KBS는 보도를 통해 “월 5000원까지”는 32.1%, “월 1만 원까지” 25.6%로 나타났고, “월 1만 5000원까지” 와 “월 2만 원까지”가 각각 7.0%, 5.6%로 집계됐다고 했다. 설문조사지에는 ‘월 5000원까지’ 부터 ‘월 2만원 이상’ 까지 5개의 문항이 있다. 이를 다 포함해 72%라는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김중백 교수는 이를 두고 “만약 월 5만원 이상 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으면 응답자는 고르기 꺼려졌을 것”이라며 “합리적인 범위를 선택지에 두는 것 또한 설문지 작성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설문조사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자 또는 언론사가 쓰고 싶은 기사가 있는데,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니 의도가 있는 설문지를 통해 답변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 “80개 가량의 질문에 스마트폰으로 하는 답변 방법은 심층적 분석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KBS 뿐이 아닌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기사를 쓰는 우리나라 모든 언론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스피커’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탈원전 기조를 계속 가져가면 전기세가 인상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인데, 이를 무마하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보내기 위해 불완전한 설문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