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앓던 딸을 23년 동안 돌봐오다 끝내 살해한 어머니에게 징역형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신혁재)는 지난 5월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방 바닥에 누워 잠자던 딸(30대)의 목을 집에 있던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씨(60대)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숨진 딸은 중학생이던 1997년부터 조현병을 앓았다. 환각을 보고 망상을 하는 등 일상적 생활이 어려운 중증이었다. 어머니 A씨는 딸을 돌보기 위해 20년가량 다녀온 직장도 그만뒀다. 하지만 딸은 계속 치료를 거부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거부했고, A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가출도 잇달았다. 정신병원에 입원도 시켜봤지만, 갈수록 병세는 악화됐다.
올해 5월, A씨는 마침내 딸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집안 행사로 지방에 내려간 다음 날을 범행 시점으로 잡았다. A씨는 검찰에서 “남편이 내려가고… 그다음 날인데, 그날 제가 아이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A씨는 딸을 살해하기 직전, 방문 앞에 서서 잠자는 딸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고 했다. “죽기 전에 딸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마음도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곤 범행을 저질렀다.
A씨 변호인은 “A씨가 범행 당시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 증후군’으로 심신미약 상태였으며,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정신질환을 앓던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펴 왔다 해도 자녀의 생명에 관해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피고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 모두가 피고인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과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는 데다, 계속된 노력에도 피해자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차츰 심신이 쇠약해져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보호의 몫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감당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비슷한 사건에 비해 실형 4년은 무거운 형벌”이라고 했다. 지난해 광주고등법원은 7년간 치매에 걸린 부인을 간병하다 살해한 80대 노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2년 동안 치매 아내를 간호하다 살해한 79세 노인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