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정모(25)씨는 9월 말, 근육이 잘 보이게 몸에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보디 프로필(body profile)’ 촬영을 했다.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보디 프로필은 보통 피트니스 선수나 운동 강사 등이 근육과 몸매를 강조해 찍었던 스튜디오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정씨는 100일 넘게 헬스 트레이너에게 PT(개인 트레이닝)를 받으며 근력 운동과 식단 관리를 했다. 체지방만 10㎏ 넘게 뺐다. 정씨는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잘 풀리지 않았던 올해, 가장 뿌듯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했다.
20~30대 사이에서 보디 프로필 촬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의 배경은 코로나 사태가 10개월을 넘어가는 가운데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웬만해선 ‘성취감’을 맛보기 어려워진 시대적 상황이다. “최선을 다해도 내 맘대로 안 되는 시대에 다이어트와 운동의 성과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직장인 홍성희(27)씨는 내년 2월 보디 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몸을 만들고 있다. 사실 그는 작년 12월에 보디 프로필 사진을 이미 한 번 찍었다. 홍씨는 “2월부터 코로나로 야외 활동도, 사교 활동도 제대로 못 한 채 축 처져 있다 보니, 문득 보디 프로필 촬영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5개월간 열심히 운동했던 때가 그리워졌다”고 했다.
대학생·직장인 등 일반인이 그럴싸한 보디 프로필 사진을 얻으려면 보통 3개월 이상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대학생 김상욱(24)씨도 지난 5월 복근이 선명히 드러난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김씨는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내가 노력한 성과이기 때문에 몸매가 드러난 사진을 올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씨는 4개월간 체육관에서 주 6회 2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고 닭 가슴살 등으로 구성된 고단백 저지방 식단을 지켰다. 촬영을 앞두고는 근육이 사진에서 돋보이게 하기 위해 피부를 그을리는 ‘태닝’을 15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열 번 받았다. 그는 “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술인데, 코로나 때문에 친구를 못 만나니 그게 수월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디 프로필 열풍을 일종의 ‘보상 심리'로 분석했다. 코로나로 인해 떨어진 자신감과 자기 만족감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로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이 코로나로 불확실해진 ‘미래’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즉각적인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는 ‘몸매’도 일종의 사회적 지위로 인정된다. 젊은 층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박탈감을 그렇게라도 줄여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