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3일 “나는 5.18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5.18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폄훼한다”며 “내 21살 때의 순수했던 5.18을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11일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글을 썼던 최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발표하고 나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정부·여당이 지난 9일 처리한 5·18민주화운동 역사 왜곡 처벌법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광주(光州)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1980년 5월 21세의 나이로 5·18을 겪었다.
최 교수는 “5.18은 혁명이고 민주화 투쟁인데, 민주당의 전유물이 되었다. 정치인들에게 포획되었다”고 했다. 그는 “물론 여기까지 오는 길에 민주당과 정치인들의 노고는 또 얼마나 컸겠는가. 박수를 보낸다”면서도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은 5.18만 가져가고 5.18의 정신인 민주와 자유는 잃어간다”고 했다.
최 교수는 “법으로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5.18을 살리는 길”이라며 “법으로 지키려 하는 것은 왜 나쁜가. 5.18이 쟁취하려고 했던 민주와 자유의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한다”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와 자유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최 교수는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며 “그래도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는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독재의 첫걸음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표현 내용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출발한다”며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최 교수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지난 11일 발의한 ‘검사·판사는 사직 후 1년간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비판하며 “법의 정신은 이미 다급한 현실에 의해 심히 왜곡되고 있다”며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이어 “이런 법을 만들려는 행위가 정의가 되어 버린 사회, ‘5.18 역사왜곡 처벌법’도 이 연장선의 출발로 해석될 큰 위험을 안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유신헌법,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계획,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 등을 거론하며 “모두 다 ‘현실’에서 최악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들이었다”며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인이 탄생하는 경로는 다 이렇다. 독재의 길은 이렇게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를 법으로 묶지 말고 내 5.18을 네 5.18로 정하지 말라는 말”이라며 “그것이 더 민주이고 더 자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또 “표현의 자유에 입각해서 호루라기를 부는 대중들을 ‘살인자’라고 하면 안 된다”며 “‘살인자'라고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면, 이제는 맘에 드는 소리만 듣지, 맘에 들지 않은 호루라기 소리는 듣지 않고 증오하겠다는, 자신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살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1월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8·15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살인자”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비판하는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고 거기다가 듣기 싫어지면, 깨달아라. 자신이 무너지고 있음을”이라며 “차지철이나 이기붕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