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달 이용구 법무차관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형사 입건 하지 않고 내사 종결 처리한 사실이 논란이 되자, 19일 “판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경찰이 제시한 판례는 2015년 운전자 폭행 처벌이 강화되기 이전 법률에 대한 판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이처럼 맞지도 않는 판례까지 동원해가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배경에는 ’윗선 지시'가 있었고, 그걸 숨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차관은 지난달 초순 어느날 밤 늦은 시각 자택인 서울 서초동 A아파트 입구에서 자신을 태우고 온 택시 기사를 폭행했다.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택시기사가 “내리라”며 깨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르면, 운전자를 폭행한 사람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일반 폭행보다 무겁게 처벌된다. 이때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법률에 적시돼 있다.
하지만 서초경찰서는 택시 기사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입건조차 하지 않고 ‘내사 종결’로 처리했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일반 폭행 사건처럼 처리한 것이다. 이 차관은 사건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에서 물러난지 6개월째되는 변호사 신분이었다.
경찰은 헌법재판소 판례(2015헌바336)를 거론하면서 “헌재도 ‘교통안전질서를 저해할 우려 없는 장소에서 계속 운행 의사없이 주·정차한경우는 ‘운행중’(특가법 적용 대상에서)에서 배제한다'고 일관되게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당 판례는 판시사항 첫줄이 이렇게 시작한다. ’특가법 2015. 6. 22. 법률 개정되기 전의 것'. 특가법 운전자 폭행 조항은 2015년 6월 개정에서 강화됐다. 이 차관 사례처럼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도 특가법 적용 대상'이라는 대목이 이때 들어갔다. 재경 부장판사는 “2015년 개정안은 검찰이나 경찰이 특가법 운전자 폭행 조항을 고무줄처럼 적용하는 경우가 있어, 그걸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다수 법조인은 “옛 법조차도 경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평가했다. 우선 폭행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단지 입구 또는 단지 내 도로가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 없는 장소’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중 정차라면 애초에 교통안전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라 볼 수 없겠지만,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대형 로펌소속 변호사 A씨는 “법률은 물론 판례에도 ‘도로냐 아니냐'를 따진 게 아니라 ‘안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실제로 보험개발원 2017년 내부자료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의 약 16%가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 등에서 발생한다.
더 논란이 큰 것은 ‘계속 운행 의사’에 관한 대목이다. 검찰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손님 내려주는 택시기사에게 계속 운행의사가 없다면, 남의 아파트에 주차칸에 차를 세우고 잠이라도 자러 가는 상황이었다는 건가”라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선 경찰관 판단 착오로 벌어진 일이라면 실수를 시인하면 그만일 텐데, 이처럼 무리수까지 둬 가며 축소·은폐하려는 것은 절대 공개되어선 안될 ’윗선 지시' 등이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