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5부 요인을 초청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헌정 사상 초유인 현직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 심문을 진행한다. 23일엔 여권에서 수차례 “무리한 수사” “정권 흔들기 목적”이라고 비판해 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다. 법조계에선 “삼권분립 체제 아래서 중요 재판을 앞두고 대통령이 대법원장 등을 청와대로 부르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부적절한 상황”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로 박병석 국회의장, 김 대법원장, 유 헌법재판소장, 정세균 국무총리,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극복 방안을 포함해 국정현안 전반에 걸쳐 의견 교환을 한다는 취지였다.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등을 제외하고 5부 요인들을 만난 것은 7개월 만이다. 지난 5월 문희상 전 국회의장 퇴임을 기념해 부부동반으로 의장 공관에서 5부 요인과 마찬 자리를 가진 게 최근의 만남이다.
그러나 만남의 시기를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온다. 22일은 윤 총장이 제기한 집행정지 사건 심문 기일이다. 윤 총장 측과 법무부가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결과는 정권 관계자들을 향한 수사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이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윤 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을 최종 재가했다. 피고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소송의 성격은 대통령의 처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윤 총장 측 변호인도 “대통령의 처분에 대한 소송이니 (피고는 법무장관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소송이 맞는다”고 했다. 법관윤리강령은 ‘소송 관계인을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면담하거나 접촉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헌재 역시 윤 총장 측이 제기한 검사징계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맡고 있다. 헌재가 검사징계법을 위헌으로 판단하면 해당 검사징계법에 따라 열린 징계위 결과도 원천 무효가 될 수 있다.
법원 내에서도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의혹을 밝히라’고 지시하자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사법 농단’이라는 이름의 사건을 진행시켜 주요 직책 판사들을 대거 교체하지 않았느냐”며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 진행되는 시점에 청와대를 찾아간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 판사는 “정권이 줄기차게 비판했던 정 교수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대통령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뼈에 박힐 수 밖에 없다”며 “일반적인 발언도 일종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질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시점에 부른다고 무조건 참석하는 대법원장 등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판사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대법원장은 항상 법관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며 “우려가 제기될 이유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