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우리 정부의 백신 물량 확보 부족, 접종 지연 우려 등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동안 알려진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①백신 물량 충분히 확보했나
문 대통령은 이날 “이미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고 했다. 정부 발표대로 내년 4600만명분의 백신이 확보된다면, 접종 대상자인 18세 이상(4410만명) 국민 모두 백신을 맞을 수 있다. 강력한 ‘코로나 장벽’이 구축되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내년 2월 무렵 우선 들여오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은 75만명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백신은 내년 2분기 이후에 도입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조만간 영국 당국의 승인을 받을 전망이나, 유럽연합(EU) 산하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을 받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이날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등은 허가 이슈가 남아 있다”며 “불확실성이 상당수 있다”고 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첫 백신 접종 이후 백신 수급이 제대로 될 것이란 보장이 없으면, 정부가 말하는 집단면역 등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했다.
②12월 초에야 접종 시기 ‘내년 2월’ 못 박아
문 대통령은 또 “(백신) 접종이 늦어질 것이라는 염려가 일각에 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가 ‘내년 2~3월 접종’을 공식 언급한 것은 지난 9일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내년 2~3월이면 초기 물량이 들어와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지난 13일 “내년 3월 이전 접종”을 말했다. 영국에서 8일(현지 시각) 첫 백신 접종이 이뤄질 무렵에야 정부·여당은 ‘내년 2~3월 접종’을 말한 것이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적어도 국민 30%(1500여만명) 이상이 접종해야 감염 차단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며 “다수 국민의 조기 접종이 관건인데 외국에 비해 접종 시기가 늦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내년 2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접종할 예정이다. 이 백신의 예방 효과는 70.4%로 알려졌다. 영국·미국 등은 예방 효과가 큰 화이자(예방 효과 95%), 모더나(94.1%)의 백신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가 화이자·모더나에 비해 더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추가 임상 결과를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임상에서 중증 이상 반응이 나오는 등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③투명한 정보 공개한 것 맞나
문 대통령은 백신 계획과 관련, “보안 외에는 정부 방침을 그때그때 밝혀왔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첫 백신 도입 계획 발표는 지난 8일이다. 코백스 퍼실리티와 1000만명분의 백신 공급 협약을 맺은 10월 9일보다 60일 뒤였고, 아스트라제네카와 1000만명분 공급 계약을 체결(11월 27일)한 지 11일 뒤이다. 정부는 지난 24일과 이날도 백신 확보·접종 계획을 발표했지만, 새로운 내용은 24일 정세균 총리가 발표한 “얀센 물량을 400만명분에서 600만명분으로 늘렸다”는 것이었다. 20일간 재탕·삼탕 백신 계획만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또 지난 6월부터 운영한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 구성원이 누군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TF의 그간 활동도 야당의 자료 요구, 언론 보도를 통해 최근에야 밝혀졌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제대로 된 정보를 본 적이 없다. 병원에서 일하는 데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④K백신 외치다 뒤늦게 해외 백신 확보전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과 9월 13일 국무회의에서 국내 백신 개발을 주문했었다. 이후 지난 9월 15일 내부 참모 회의에서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지시했다. 최근엔 백신 확보 지연과 관련, 참모들과 내각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 당국도 그동안 ‘백신 신중 접근론’을 말하다 11월 중순부터 “많은 양을 확보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박능후 당시 복지부 장관은 11월 17일 국회에서 “화이자·모더나에서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재촉한다”고도 했다. 화이자는 내년 3분기 이후 도입되고, 모더나는 계약 체결도 안 됐는데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말에야 ‘백신 적극 도입’ 공무원에 대한 면책을 결정했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정부가 백신 주권 문제에 집착해 해외 백신 확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결국 뒷북 조치를 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