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 주민등록인구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자연 감소했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으로 1년 전보다 인구가 약 2만명 줄었다. 저출산 쇼크로 인한 ‘인구 절벽'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3일 2020년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2019년보다 2만838명 줄어든 5182만902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작년 출생아는 역대 최저치인 27만5815명으로 30만명 선이 붕괴되며 2019년보다 10.7%나 줄었다. 반면 사망자는 30만7764명으로 2019년 대비 3.1% 늘었다. 통계청이 1970년 공식적으로 출생 통계를 작성한 이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른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인구가 줄어든 것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는 속도다. 행안부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2017년 처음으로 40만명 선이 무너진 데 이어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30만명 선마저 붕괴됐다. 이는 전문가들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통계청은 4년여 전인 2016년 12월 2029년부터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9년이나 앞당겨 시작된 것이다. 통계청은 당시 2065년 출생아 수를 26만명으로 예측했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지난해 27만명 선까지 내려왔다.
급격한 노령화 추세도 계속됐다. 지난해 60대 이상 인구는 약 1244만명으로 전체의 24%에 달한 반면 10대 이하 인구는 16.9%에 그쳤다. 장기적으로 새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이들이 부양해야 할 고령층은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2011년만 해도 60대 이상 인구 비율은 15.8%였다.
서승우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은 “인구 감소의 시작, 1·2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 역대 최저 출생아 수는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각 분야 정책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9년 빨리 온 ‘인구 데드크로스’… 내수·재정·연금 줄줄이 무너진다
강원 삼척시 근덕면 장호초교는 올해 졸업생이 한 명도 없다. 1939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학생 수가 줄면서 작년과 재작년엔 졸업생이 2명이었는데, 결국 ‘0’이 된 것이다. 김성숙 교장은 “아이들이 없어 이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강원도에서 졸업생이 없어 졸업식이 열리지 못하는 학교는 삼척 가곡중과 화천 다목초 등 10곳이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2017년 처음으로 30만명대로 떨어지더니 3년 만인 지난해 2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1990년 출생자 수(65만명)와 비교해 30년 만에 58% 줄어든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한 세대 간 인구 차이가 이렇게 나는 경우는 전쟁 상황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정부 전망(2016년)보다 9년 일찍 온 충격파는 경제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미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 2018년(3746만명) 정점을 찍고 줄어드는 중이다. 2015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 비율(73.2%)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지만, 이대로라면 2067년에는 이 비율이 최하위로 추락한다. 생산할 사람이 줄면 국내총생산(GDP)은 쪼그라들고 경제 성장의 맥박은 느려진다. 세금 낼 사람이 줄면 세금으로 충당하는 경제정책과 현행 복지 시스템도 지속이 불가능해진다.
◇신생아 30만명 깨지면서 인구 감소 가속화
인구 감소가 시작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감소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통계청은 2019년에 발표한 인구 추계에서 2020년에 29만2000명이 태어날 것으로 봤다. 다만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이 0.81명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최악의 경우엔 2020년 출생아가 26만3000명에 그칠 수도 있다고 했다. 작년에 실제 27만6000명이 태어났다. 현실은 정부가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이 시나리오대로 계속 진행될 경우 총인구 5000만명 선이 붕괴되는 시점도 2034년으로, 당초 예상보다 10년 빨라지게 된다.
올해 전망도 어둡다. 출산율의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결혼 비율)은 2017년 5.2건으로 OECD 평균(4.8건)을 웃돌았지만, 지난해 3분기엔 3.7건으로 급락한 상태다. 인구 감소는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생산가능인구 1명이 부양해야 할 인구가 0.39명이지만, 한 세대 뒤인 2050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 1명이 거의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신은 물론 다른 1명의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급여 절반이 세금과 각종 연금 등 사회보험료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하는 사람들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
◇내수·재정·연금 전 영역 충격
저출산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막대하다. 정부는 저출산 여파로 205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020년대보다 1.8% 포인트 낮아진 0.5%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해왔다. 또 국민연금이 2041년 적자 전환하고, 2056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저출산 진행 속도가 정부 예상보다 더 빨라졌기 때문에 성장률은 더 곤두박칠치고, 연금 고갈 시기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인구 절벽은 재정 절벽을 동반한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 세수가 감소하면 정부는 결국 빚을 내서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재정을 무리하게 늘려도 글로벌 저금리 상황이라 괜찮아 보이지만, 10여년 후 생산인구 급감과 고령화로 정작 정부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에 정부가 제때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5년 동안 쏟아부은 예산만 200조원이 넘지만, 추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난임에 대한 직접 지원이나 보육에 대한 지원도 꼭 필요하지만, 젊은 계층이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이 가장 시급하다”면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가장 기본적인 경제 정책으로 보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