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5일 기자회견에서 “교육 격차는 코로나 유행 이전에도 심각했지만,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교육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성적 중위권을 의미하는 ‘학습 중간층’이 얇아지고 ‘성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며 “이에 대해 깊은 위기 의식을 느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교육계에선 코로나 유행으로 등교 수업이 줄고 원격 수업이 확대되면서 기초학력 미달 등으로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서울시교육감이 이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코로나 교육 격차 올 상반기 표면화”
학교 현장에선 지난해 코로나로 급격히 확대된 기초학력 미달 등 교육 격차가 올해 상반기 중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시험을 보면 70점대를 받는 중간 점수대 아이들 비율이 예년에 25명 중 10명 정도였다면 올해는 5명으로 줄었다”며 “학교에 나와 친구·교사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면 잘 따라갔을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그냥 방치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원격 수업이 진행될수록 부모가 신경 써주는 아이들만 열심히 해오고, 나머지 아이들은 갈수록 제대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며 “예년에는 한 반에 ‘약수와 배수’ 같은 기초 개념을 몰라서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가 10% 정도였다면 지금은 이런 아이들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김모(42)씨는 “아이가 분수의 덧셈 뺄셈을 못하고 소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 5학년 올라가면 진도를 못 따라갈 것 같지만 학원 보내기도 여의치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이병민 서울대 교수팀이 서울시교육청 의뢰로 초중고교 교사 131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에서도 초등 교사의 89.8%, 중학교 교사의 83.5%, 고교 교사의 73.9%가 ‘원격 수업으로 인해 학력 격차가 벌어졌다’고 응답했다.
◇최하등급 학생 비율 10년 새 2배
올해 서울의 모든 공립 초등학교와 공·사립 중학교에는 ‘기초학력 협력강사'가 배치된다. 담임 교사와 함께 학습 부진 학생들에 대한 개별 맞춤 지도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 초2와 중1에는 기초학력 수준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보강해주는 ‘집중학년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계에선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므로 기초학력 강화를 보장할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읽기·수학·과학 과목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학생 평균 비율이 우리나라는 첫 평가 때인 2000년 6%에서 2018년 14.8%로 급증했다. 특히 2009년 6.7%에서 2018년 14.8%로 10년 사이 2배로 늘었다. 일본(13%), 홍콩(11.1%)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높다.
최하등급은 약품의 복용 안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동차 주유 눈금을 보고도 기름이 얼마 남았는지 계산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문맹(文盲)에 가까운 정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가정 배경 하위 20% 학생의 읽기 PISA 최하등급 비율도 2012년 13%에서 2018년 25%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부 장관)은 “가정 배경 하위 20% 학생 4명 가운데 1명이 기초학력 미달인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현 정부 들어 학력 부진 심화
교육계는 현 정부 들어 전교조 등의 반대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취약해진 것도 학력 부진의 한 원인으로 본다. 2019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 과목 기초학력 미달 중학생 비율은 11.8%로 집계됐다. 2017년 7.1%에서 2년 만에 1.6배쯤 늘어난 것이다. 전교조와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일제고사’라고 비판해 학업성취도 평가가 2017년부터 전체 학생의 약 3%만 치르는 표집(標集) 평가로 바뀌면서 미달 비율은 높아졌다. 전체 학생 대상으로 평가하던 2015년(4.6%)과 2016년(4.9%)엔 미달 비율이 5% 이하였다. 2019년엔 서울시교육청이 모든 중1·초3 학생을 대상으로 지필고사 방식의 기초학력진단 검사를 시행할 계획을 발표했다가 전교조 반발에 철회하고 교사의 관찰 상담 등으로 대체하게 하기도 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는 “기초학력 미달뿐 아니라 다음 학년 진급 후 정상적으로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기본학력 미달 학생이 올해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이민정 한국교총 정책추진국장은 “초등학교부터 누적된 학습 결손은 수년만 지나도 따라잡기 힘든 학력 차이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