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몰려온 역대급 한파가 전국을 덮치며 곳곳에서 최근 수년간 볼 수 없었던 겨울 풍경이 펼쳐졌다. 영하 20도 안팎의 강추위가 몰아치면서 바다까지 얼어붙었고, 눈 쌓인 동네 골목길은 눈썰매장이 됐다. 동파(凍破)와 정전 등 사고 피해도 잇따랐다.
8일 부산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 해안가 약 300~400m 구간은 마치 북극처럼 하얀 얼음으로 뒤덮였다. 육지 쪽으로 밀려들어 온 바닷물이 매서운 추위에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이날 부산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2도였다. 2011년 1월 16일 영하 12.8도를 기록한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해변 시설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근래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장관에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도 보였다. 낙동강 일부 구간과 온천천 등 도심 하천도 얼었다.
경남 진해의 최저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지면서 해군기지사령부에 정박한 비로봉함이 바다 얼음에 둘러싸였다. 해군 관계자는 “사령부 내 군항(軍港) 바다가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바닷속으로 뛰어든 이들도 있었다. ‘서핑 성지(聖地)’로 불리는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선 동호인들이 한파를 뚫고 서핑과 패들 보드를 즐겼다. 바다 수온은 10~14도로 바깥 날씨보다 한결 따뜻했다.
이날 아침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8.6도까지 떨어졌다. 영하 19.2도를 찍은 1986년 1월 5일 이후 35년 만에 가장 낮았다. 체감 기온은 영하 25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날 오후 서초구 반포동 잠원초등학교 인근 골목길은 눈썰매를 즐기는 아이들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경사진 언덕길에 6일 내린 눈이 얼어붙자, 코로나로 집에 갇혀 있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나와 눈썰매를 탔다.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윤현옥(59)씨는 “옛 추억이 떠올라 나왔다”고 말했다.
강원도 산악 지역은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로 떨었다. 향로봉 최저기온은 영하 29.1도를 기록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체감 기온이 영하 44.1도까지 떨어졌다. 한우 축산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오전 기온이 영하 28.2도까지 떨어진 횡성군 청일면에서 소 80마리를 키우는 박순영(62)씨는 우사(牛舍)에 온열기를 설치했고 송아지에겐 두툼한 방한복을 입혔다.
정전과 동파 사고도 급증했다. 특히 60년 만의 한파가 몰아친 전주에선 7일 밤 10시부터 8일 오후 1시까지 계량기 동파 사고가 200건 접수됐다. 최근 한 달 새 나온 39건보다 5배 이상으로 폭증한 것이다. 인천에서는 이날 새벽 부평구 갈산동 신부평변전소에서 불이 나 3만8000여 가구가 정전됐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도 잇따랐다. 한 주민은 “엄동설한에 단전, 단수로 씻지도 못 하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폭설과 한파로 방전된 배터리 충전과 견인을 위해 보험사 긴급 출동 서비스 요청도 급증했다. 손보 업계에 따르면 지난 6, 7일 이틀간 보험사에 접수된 배터리 충전 등을 위한 긴급 출동 서비스는 21만2881건에 달했고, 견인을 요청하는 출동 요청은 3만6379건이었다.
이번 추위는 북극 일대의 이상 기온 탓이다. 기상청은 “기온 상승으로 영하 50도에 달하는 북극 냉기를 가두던 제트 기류가 흐트러지면서, 차가운 북극 공기가 한반도 북쪽까지 남하했다”고 설명했다. 주말을 지나며 강추위는 서서히 약화하겠지만, 오는 12일까지는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24도~영하 6도를 기록할 전망이다.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5도로 예상되고, 부산(-10도)·대구(-14도)·대전(-16도)·광주(-13도)·춘천(-22도) 등도 추위가 이어진다. 10일에도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에서 영하 5도 정도인 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제주와 전라 서해안, 충남 서해안에는 10일 오전까지 눈이 계속 올 것으로 예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