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 눈이 내린 지난 일주일여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선 ‘눈사람 부수는 사람들'이 큰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전국 곳곳의 CC(폐쇄회로)TV에 우연히 찍힌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의 영상이나, 부서져 있는 눈사람 사진이 올라와 수십만회씩 공유되고 있을 정도다. 해당 글에 많은 사용자들이 분노를 표현하고 진지한 토론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지난 8일 대전의 한 카페 앞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 모양의 눈사람을 지켜보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주먹을 휘둘러 부순 한 남성의 영상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이 발단이었다. 이것이 페이스북 등으로 옮겨지며 댓글만 1만여개가 달렸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의 한 빌라 1층 출입문에도 부서진 눈사람과 관련한 ‘항의서’가 붙었다. 이곳 주민이 붙인 종이에는 “눈사람이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발로 차나요. 아이가 코로나로 문 밖에도 못 나가 여태 눈 오는 것만 바라보다 오늘 처음 만든 눈사람인데. 눈사람 부수는 것 정말 생각 없고 미운 행동입니다. 사과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손 호호 불어가며 만든 토끼 눈사람이 1시간도 안 돼 부서졌기 때문이다. 눈사람을 부순 사람의 발자국은 같은 빌라로 나 있었다. 글쓴이는 “아이가 창 밖으로 눈사람이 망가진 걸 보고 한참 울었다”며 “그래도 사진 속에는 남아있지 않냐고 달랬지만 아이가 속상해하니 나도 화가 났다”고 했다. 이 주민의 사연은 트위터에서 1만7000번 넘게 공유됐다.
비슷한 사연과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남이 시간과 정성 들여 만든 것을 망가뜨리고 즐거워하는 걸 보니 소름끼친다” “생명체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여러 의견이 따라 붙었다.
눈사람 파손 행위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며 공감을 표시했을까. 한국 사회의 ‘폭력 감수성’이 이전보다 높아진 방증이란 의견이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지금 양부모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대상’을 향한 폭력에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며 “자기 기분 풀겠다고 남에게 상처주는 행위를 사람들은 폭력으로 인식하고 이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인이 소화하지 못한 좌절감은 폭력적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눈사람을 이유 없이 부수는 행위도 이런 ‘좌절 공격’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며 “폭력성은 쉽게 내성이 생기는 만큼 눈사람을 향한 폭력이 동물이나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