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지방의 한 아동전문보호기관 소속 A상담사는 14세 중학생 아동의 집을 찾았다. ‘공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당한다며 동사무소 직원이 신고했다. 부모가 전화를 받지 않아 무작정 집을 찾아갔지만, 부모를 만날 수 없었다. 아이의 학교에 연락했다. 교장은 ‘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면담을 막았다. 교사는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인데, 오히려 “학생을 면담하려면 부모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다.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왕복 3시간 걸리는 아동 집을 한 달 새 여섯 번 찾았다. 간신히 부모를 만났지만 “상담할 필요없다”며 학대 여부로 면담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A씨는 학대 신고를 받고도 자신의 임무인 ‘부모 상담·교육’을 하지 못했다. 보호기관 관계자는 “아동이 면담을 안 한다 해도 교사가 아이를 설득해야 할 판에, 학교부터가 민원이 발생할까 봐 몸을 사리니 아이들 안전을 어떻게 확인하겠느냐”고 했다. 4개월 뒤 A씨는 일을 관뒀다. 이 기관의 상담사는 총 6명. 팀장 2명을 제외한 네 자리에 작년 한 해에만 9명이 퇴사했다.
◇상담사들 “분리는커녕 면담도 못 해”
전국에는 A씨처럼 아동 학대를 보호·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상담사 736명이 있다. 소위 ‘아보전’이라 불리는 민간 아동복지 전문기관 69곳에 소속된 이들이다. 보건복지부 소관에 있지만, 지자체 위탁을 받는 민간단체로 소속돼 일한다. 이들은 현장 최전선에서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아동 학대 사건을 막는다.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은 사건을 종합 판단해 수사에 착수하고, 아보전 상담사는 후속 상담·지원 등 관리 업무를 맡는다. 상담사들은 “경찰이나 지자체 공무원은 강제 조사권이나 과태료 부과 권한이 있지만, 상담사는 아동을 부모와 분리하는 것은커녕 면담을 요구할 권한도 없다”고 했다.
아동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부모가 방문을 허용하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거부하면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이웃 등을 통해 간접으로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B상담사는 “코로나로 아이들도 집 밖에 잘 안 나오다 보니 안전 확인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새벽 4시 가정방문, 머리채 잡히기도
수도권의 한 아보전 상담사 C, D씨는 새벽 4시에 학대 의심 아동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부모가 PC방을 운영하는데 “낮에는 자야 하니 정 오려면 영업 끝나는 새벽 4시에나 와보라”고 해서다. 상담사는 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 ‘2인 1조’로 움직이게 돼 있다. 그래서 둘이 함께 새벽에 일어나 아동 집을 찾은 것이다.
상담 경력이 1년을 갓 넘은 지방의 E상담사는 학대 아동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머리채를 붙잡혔다. ‘아동 보호를 맡는 기관이 서비스 대상을 고소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법률 자문 때문에 망설이다가, E씨는 학대 아동 아버지를 고소해 결국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E씨는 일을 관뒀다. 지방의 한 아보전은 학대 아동을 면담했다가 부모로부터 ‘아이를 가두고 학대했다’며 역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낮은 급여에, 평균 근속연수 2.6년
아보전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2.6년에 불과하다. 전문성을 갖추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전라도의 한 아보전에선 작년 한해에만 상담사 7명이 퇴사했다. 충원도 쉽지 않다. 수도권의 한 아보전은 올해 상담사 정원은 4명이 늘었지만, 지난달부터 한 달 넘게 모집 공고를 내도 1명밖에 충원하지 못 했다.
한 아보전 관장은 “아동 학대 상담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면 더 편하고 급여도 많기에 아보전 상담사로 일하려는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아보전 직원의 작년 평균 급여는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사 급여 가이드라인의 86.7% 수준에 그쳤다. 다른 아보전 관장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전문가보다는 경력 없는 신참을 주로 뽑게 된다”며 “그렇게 들어온 신참도 미래가 잘 보이지 않으니 일찍 그만두는 것”이라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 가정의 안전 점검·지원 업무는 아보전이라는 민간기관에 위탁됐을 뿐 엄연히 공적 영역인데, 상담원을 우습게 보고 현장에서 무시하는 것은 큰일”이라며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아동 학대 사례를 찾아내고, 부모 상담·교육을 진행해야 심각한 아동 학대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