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오느라 2년 늦게 취업한 건 누가 보상해주나요.” “군대 다녀온 남성은 정년을 2년 늘려줘야 합니다.”

2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때아닌 ‘군필자 역차별’ 논란이 벌어졌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직원 승진 자격을 따질 때 군(軍) 복무 기간을 반영해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린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군 경력을 인정해 호봉을 높여주고 월급을 더 주는 것은 괜찮지만, 군필자라고 더 빨리 승진시키는 건 남녀 차별이라는 논리다. 공공 기관 평가권을 쥔 기재부가 내린 지침은 대부분 그대로 수용된다.

국방부가 2021년 새해 첫 날을 맞이하여 11사단 기갑수색대대의 K2 전차가 기동훈련하는 모습을 공개했다./국방부

그러자 공공 기관 직원이나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여자도 군대 다녀오면 군복무 기간을 인정해줄 텐데 뭐가 남녀 차별이냐”는 말이 나왔다. 역차별을 시정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청원자는 “보상 없이 희생만을 강요하는 국방의 의무, 최소한의 보상 체계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24일 오후 7시 기준 1500여명이 동의했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최근 공공 기관에 ‘승진 시 남녀 차별 규정 정비’ 공문을 보냈다. 기재부는 이 공문에서 “군 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자격을 정하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니 각 기관은 관련 규정을 확인해 필요한 경우 조속히 정비해 달라”고 했다.

2018년 기준 공공 기관 90%, 일반 기업체 40%는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으로 인정해 호봉을 높여준다. 따라서 입사 동기라도 군필자 월급이 군미필자보다 많다. 여기까지는 합법적이다. 현행 제대군인지원법은 “제대 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공공 기관은 군 복무 기간을 호봉뿐 아니라 승진 심사에도 반영한다. 예컨대 한국전력공사는 대졸자가 4(가)급(차장대우~과장)으로 승진하려면 최소 17년을 근무해야 하는데, 군필자는 2년 복무 기간을 인정받아 15년만 근무해도 과장이 될 수 있다. 미필자보다 2년 먼저 승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행이 군대를 안 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기재부 지침이 알려지자 공공 기관 남자 직원들은 “군 복무 기간을 뺄 경우 군필자는 같은 나이의 미필자보다 무조건 2년 늦게 승진하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공공 기관 직원은 “같은 남자라도 군필자와 미필자 간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인데, 왜 남녀 차별의 문제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 혼란도 예상된다. 승진을 앞두고 있던 일부 군필 남성 직원은 갑자기 2년 가까이 승진이 늦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승진은 업무 능력으로 해야 하는데, 군대 경력이 무슨 상관이냐”는 반박도 나온다. 여성계도 환영 입장을 보였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우리 사회 성 평등과 공정성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환영한다”면서 “여성뿐 아니라 군대를 가지 않은 남성들이 받아온 차별도 해소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공공 기관별로 차별적이던 인사 제도를 공무원에 준해서 개선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현재 공무원 승진 시에는 군 경력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과거부터 유권해석 등을 통해 (남녀 차별이라) 판단한 사안”이라면서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어 규정 정비를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고용부는 남녀고용평등법 질의 회신을 통해 “군 복무 기간에 상응하는 호봉을 부여하는 건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군 복무 기간만큼 승진 기간을 단축해주는 건 이중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라면서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이 승진에서 불리하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결여한 차별”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일부 공공 기관의 과도한 특혜를 정비하라는 것으로, 군 경력자를 합리적으로 우대하는 것까지 폐지하라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