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전 10시 부산에 사는 여성 A씨는 전북 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창가 좌석에 앉은 A씨의 옆좌석에는 30대 남성 B씨가 5분 뒤 탑승했다. 곧이어 “안전 운행을 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안전벨트를 매던 A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역시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줄로만 알았던 옆 좌석의 남자승객 B씨가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신체 중요부위를 노출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깜짝 놀라고 당황했지만 대응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꼭 감고 잠자는 척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나 승객들에게 알려 도움을 청할까 생각도 했지만 B씨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A씨는 가슴을 졸이며 어서 빨리 고속버스가 중간에 휴게소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처럼 자리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좌석을 바꿔 앉을 생각이었다.
A씨는 휴게소에 버스가 도착하자 서둘러 내렸다. 주변에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B씨의 시선이 두려웠다. 다시 버스에 오르면서 다른 자리를 찾아봤지만 이미 만석이었고, 어쩔 수 없이 B씨 옆자리로 돌아왔다.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하자 B씨는 다시 신체 중요부위 노출을 계속했다.
그러자 A씨는 다시 용기를 냈고,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했다. 자신의 휴대전화 메시지 창에 ‘옆에 탄 남성이 음란행위를 한다. 직접 찍으려니 겁이 난다. 대신 촬영을 해달라’는 내용을 적어 뒷좌석 승객에게 슬쩍 전달했다. 혹시 B씨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했지만, 우선 증거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행히 뒷좌석 승객은 B씨의 음란행위를 촬영해 A씨의 휴대폰으로 전달했다. A씨는 옆좌석의 B씨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경찰에 문자메시지로 신고했다. A씨가 불안한 가운데 신고를 하는 동안에도 B씨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전주에 도착할 때까지 음란행위를 이어갔다.
결국 B씨의 음란행위는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서 멈췄다. A씨의 신고를 받고 미리 출동해 있던 경찰은 B씨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3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던 A씨는 다리가 풀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A씨는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날 이후 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있다. B씨가 강력한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찰은 B씨에게 ‘공연음란' 혐의만 적용해 지난 3일 검찰에 송치했기 때문이다.
A씨는 “B씨의 범행은 단순 공연음란죄가 아니라 옆자리의 여성승객을 겨냥한 강제추행으로 처벌해야 한다”며 “증거 동영상을 보면 B씨는 자신의 옷으로 한쪽은 가린 채 온전히 나를 향해 신체를 노출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또 “최근 사례만 봐도 2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여고생 뒤로 다가가 음란행위를 했는데, 이 남성은 강제추행죄로 처벌받았다”며 “이 사건에서도 20대 남성은 여고생을 건드리지 않고 음란행위만 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A씨는 “경찰 지구대에서 조사받을 때도 ‘범인이 나를 알고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해코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신변보호 요청을 안 받아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진술을 할 당시 ‘신변보호에 대해 안내 받았으나 요청하지 않습니다’라는 항목에 동의했다”며 “추후 언제라도 신변보호를 원하면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A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