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없이 자유토론 가능 채팅앱 클럽하우스.

‘고스펙자 금지 모임’ ‘욕 들어주는 방’ ‘작업하면서 백색소음 나누는 방’….

출시 1년도 안 된 실리콘밸리의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SNS) ‘클럽하우스’가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도 급속히 퍼지며,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작년 4월 출시된 아이폰 전용 앱으로, 얼굴 노출 없이 단체로 음성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종 서비스다. 초대 혹은 기존 이용자의 수락을 통해서만 가입 가능한 ‘폐쇄성’이 특징. 등록 이용자 수는 600만명 이상, 주간 이용자 수는 200만명 수준이다. 클럽하우스에 생기는 방들의 면면을 보면, 젊은 MZ(밀레니얼·Z)세대 의사소통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젊은 이용자들은 이 서비스를 ‘벽이 허물어진 라디오’ 같다고 평가한다. 기존 라디오는 DJ가 혼자 떠들고, 청취자는 듣기만 하는 일방향 구조다. 반면 클럽하우스는 참여자 누구나 ‘손들기’ 버튼만 누르면 발언권을 얻어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평적 구조의 ‘MZ세대 라디오’인 셈이다. 대학생 김승호(23)씨도 지난 10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음악 DJ 페기 구(Gou)와 ‘무서운 이야기’ 방에서 직접 대화를 나눴다. 김씨는 “동경하던 스타와 스스럼없이 전화하듯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클럽하우스는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취업 정보’ 창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모바일 금융 스타트업 토스는 신입사원 채용을 앞둔 지난 7일 ‘토스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란 방을 열었다. 방에 입장한 이승건 토스 대표와 직원들에게, 청취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금융계 취업을 준비하는 박민선(26)씨는 “학교 취업게시판을 봐도 원하는 정보는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선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현직자의 좋은 기운까지 얻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외국계 기업에 경력직 입사 제안을 받았다는 백모(26)씨도 “클럽하우스를 통해 외국계 기업 현직자로부터 ‘연봉협상 팁’을 얻었다”고 했다.

모르는 이들끼리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들 세대의 특징이다. 기존의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은 지인(知人) 중심의 서비스였지만 클럽하우스는 각각의 방 주제를 보고 들어온 낯선 이들끼리 모여 소통하는 방식이다. 훈픽처스 김남훈(45) 대표는 “목소리만으로 남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익명성과 낮은 장벽 덕분”이라며 “전문가 중심으로 고급 정보가 오가는 방도 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소소한 이슈를 놓고 가볍게 떠드는 식의 방도 많다”고 했다.

오프라인 모임 대신 취미·관심사 중심의 ‘음성 대화’ 모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밤의 칵테일 이야기’ ‘미래의 교육’ ‘미국 주식 투자방’ 등 주제도 다양하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그간 코로나 때문에 자기 계발이나, 관심사가 생겨도 이를 배우기 쉽지 않았다”며 “그런 욕구들이 클럽하우스를 통해 해소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 유명인이 개설한 방에는 이용자들이 급격히 쏠리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예를 들어 ‘고스펙자 금지 모임’은 똑똑하고, 잘난 척하는 이용자들에 대항해 소소한 얘기만 나누자고 만들어진 모임이다. 음성 서비스인데도 ‘마이크 끄고 조용히 맞팔(서로 친구 맺기)만 하자’는 방도 있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말고, 조용히 친구 수만 늘리자는 철저히 실용적 목적의 방이다. 심지어 ‘고라니 소리 흉내 내기 방’ ‘욕 들어주는 방’ ‘방귀 고민 나누는 방’도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 라디오 듣듯 ‘낯선 이들의 대화 소리’를 틀어놓기도 한다. ‘작업하면서 백색소음 나누는 방’ ‘공부 백색소음 방’ 같은 식이다. 혼자 있지만 남들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직장인 박윤지(26)씨는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야 하는 화상채팅 앱과 달리 무선이어폰만 끼고 있으면 다른 일을 하거나, 이동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클럽하우스 열풍에 대한 비판도 있다. 대화 내용을 저장할 수 없어, 실시간으로 방에 참여해야만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특성이 이용자들의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를 자극한다는 것. 포모는 유행에 뒤처져 나만 혼자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뜻한다. 초대 혹은 이용자 수락을 받아야 입장 가능한 폐쇄성 때문에, 당근마켓 같은 장터에서 2만~5만원의 고가(高價)에 클럽하우스 초대권이 팔리는 것을 두고 “마치 중세 귀족 파티 같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