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건립 예정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봉개동 폐기물처리장에 ‘압축 포장 폐기물’이 가득 쌓여 있다. 공항이 신설되면 도내 쓰레기가 포화할 거란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photo 이성진 기자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제주시 봉개동(회천동) 폐기물처리장. 5년 전부터 폐기물처리장 입구 너머엔 가로 약 1m, 세로 1.5m, 높이 1m가량의 커다란 직육면체 모양 물체들이 겹겹이 쌓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흰색 건물 같지만 실제는 서로 다른 쓰레기를 압축해 올린 ‘압축 포장 폐기물’ 덩어리들이다. 압축 포장 폐기물은 대부분 오랜 기간 한자리에 방치되면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고 일부 포장은 뜯겨져 악취를 내뿜고 있다. 곳곳엔 폐기물 내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흥건했다. 압축 포장 폐기물 하나당 무게는 약 900㎏. 제주도청은 지난 2015년 도내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이 압축 포장 폐기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그 양은 9만t까지 이르렀다.

인근 주민들은 이 폐기물 덩어리에서 나는 악취 등으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제주시 봉개동 은혜마을의 한 주민은 “요즘 같은 겨울은 그나마 낫다. 여름철 습한 날, 특히 비 오기 직전이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집에서 밥 먹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이런데 제2공항 건립이 추진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푸념했다. 10년 넘게 봉개동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한 주민은 “매립장에서 마치 뚜껑을 연 것 같은 끔찍한 냄새가 난다. 손님들이 식당 입구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우리가 관광객들로 먹고살지만 제2공항 건립은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제2공항 건립을 반기지 않는 건 공항이 추가로 건립되면 건설폐기물은 물론 관광객 증대로 각종 생활쓰레기가 넘쳐날 거란 우려에서다. 제주도는 섬 안에서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이미 도는 봉개동을 비롯해 곳곳에서 쓰레기 처리 과부하 사태를 겪어 왔다. 국토부는 2010년대부터 기존 제주공항 포화의 대안으로 제2공항 건립을 구체화해왔지만, 이런 상황에서 공항을 신설하면 제주도는 ‘청정 섬’에서 ‘쓰레기 섬’으로 뒤바뀔 거란 것이 상당수 주민들의 생각이다. 오인순 봉개동쓰레기매립장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은 “제주를 사랑해주고 찾아주는 건 반길 일이다. 하지만 공항은 하나로 족하다. 이미 제주는 제주다움을 잃고 넘치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제2공항은 쓰레기 대란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료: 국토부, 그래픽: 뉴시스

쓰레기매립장 10곳 중 9곳 포화

이 같은 의견은 지난 2월 18일 발표한 제주도민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다. 국토부의 제2공항 건립 기본계획안 고시를 앞두고 제주기자협회 소속 9개 언론사가 제주도·제주도의회 요청으로 한국갤럽과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도민들 사이에선 제2공항 건설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 따르면, 도민 2000명 중 반대 의견은 51.1%로 찬성 43.8%를 오차범위(±2.19%) 밖에서 앞질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반대가 47.0%로 찬성 44.1%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는 KBS가 지난 2015년 도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71.1%, 반대가 28.9%가 나온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5년 사이 생태 환경을 우선해야 한다는 도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이야기다.

제2공항 건립 예정지인 성산읍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제2공항 찬성 의견이 높았지만, 반대 입장을 내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우려는 앞서 봉개동 주민들의 의견과 맞닿아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성산읍 주민 중 찬성 의견은 64.9%, 반대는 31.4%를 기록했다.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선 찬성이 65.6%, 반대가 33%였다. 성산읍 전체 14개 마을 중에서는 전부터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4개 마을(온평·수산·난산·신산리)만이 반대 의견을 내보인 셈이다. 이들 마을은 일찍이 ‘제주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도 안팎에서 제2공항 건립 부작용을 역설해왔다.

김형주 성산읍 난산리 이장은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공항이 건립되면 소음 등 주민피해도 크겠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쓰레기가 더 문제”라며 “사드 사태 직전 중국인 관광객이 한창 밀려들 때 도민들은 당장 오폐수 문제로 애를 먹으며 쓰레기 문제를 피부로 체감했다. 도내 쓰레기는 생활용수, 식수, 농업용수 등으로 쓰이는 지하수를 제대로 정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라고 말했다. 강원보 성산읍 신산리 이장은 “봉개동 매립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환경 인프라는 제주 쓰레기를 수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한계치라는 이야기다. 제2공항 건립은 이 지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들 마을 도처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다수 걸려 있다. ‘쓰레기, 교통난, 하수… 제주가 몸살이다’ ‘쓰레기 대란 교통난 하수 역류… 공항보다 제주가 포화다’ ‘제2공항 건설은 제주 미래를 재앙으로 인도하는 관문입니다’ ‘제2공항 관련 공무원 출입금지’ ‘손님 더 받젠 주인 쫓아내캔 햄수다 투기꾼만 배불리는 제2공항 설러불라’….

제2공항 건립 예정지인 성산읍에 건립 반대 현수막이 다수 걸려 있다. photo 이성진 기자

건물 1500채 짓는 수준의 건설폐기물량

제2공항 건립과 관련해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는 데엔 도내 폐기물 처리시설 대부분이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도에 설치된 쓰레기 매립장은 총 10개다. 2019년 2월 가동을 시작한 동복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매립장을 제외하면 대다수 매립장은 사용기한이 다 됐거나 여유 용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시 봉개(회천)·서부·동부 매립장은 2018~2019년 쓰레기 만적으로 사용수명을 다했다. 제주시 추자·우도 매립장과 서귀포시의 색달·남원·성산·표선 매립장은 2030년 안으로 쓰레기가 만적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서귀포시 매립장의 잔여 용량은 색달 매립장 1%, 남원 6%, 표선 10%, 성산 6%에 불과하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2019년 동복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운영이 시작되면서 조금은 숨이 트였지만 그전까진 만적한 기존 매립장에 그대로 쓰레기를 매립해야만 했다”며 “남은 매립장 사용이 끝나면 도내 쓰레기들은 모두 동복으로 몰려 포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복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의 지난 2년간 월별 매립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매립 총량만 보면 2019년 2~12월 총 3만6850t의 쓰레기가 매립됐지만 2020년엔 이에 두 배 가까운 6만5455t이 쌓였다. 기존 매립장들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은 데다 소각장 시설까지 노후화된 데 따른 결과다. 동복 센터 매립장 사용기한이 2055년에서 더 앞당겨질 여지가 크다.

여기에 제2공항 건립이 가시화될 경우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제주도청의 연구용역 의뢰로 2020년 4월 발간한 ‘제주특별자치도 자원순환시행계획’에 따르면 제2공항 건설사업이 추진될 경우 건설폐기물은 2021~2023년 3년 동안 매년 2만6098t씩 총 7만8294t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지상 3층 규모 건물을 1500채 지을 때 발생하는 폐기물량과 맞먹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제2공항이 완공되면 더 많은 관광객이 유치되겠지만, 도는 지난 2008~2009년 저가항공사 5개사(에어부산·이스타항공·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 취항 당시 이로 인한 부작용을 겪은 바 있다. 대규모 택지 및 관광시설 개발이 우후죽순 일어났고 이는 쓰레기 급증으로 이어졌다. 제주도 건축물 신축·철거 현황에 따르면 2008~2012년 1만5703건에 불과했던 신축 건축물은 2013~2017년 3만6485건으로 2.5배 늘었고, 같은 기간 철거물은 412건에서 4509건으로 11배 증가했다. 도내 전체 쓰레기 일평균 발생량은 2011년 627.4t에서 2018년 1143.3t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 사이 제주도 주민 1인당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전국에서 1위로 올라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까지 1.1㎏/일을 기록했던 제주 주민 1인당 배출량은 2018년 2.0㎏/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주민 1인당 배출량은 1.1㎏/일을 넘은 해가 없었다. 전국 평균 주민 1인당 배출량 또한 마찬가지다.

쓰레기 처리 못 해 해외 불법 수출도

앞서 봉개동 폐기물처리장에 압축 포장 폐기물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도청 관계자는 “쓰레기 처리는 해야 하는데 인프라가 이를 따라주지 못하니 일단 폐기물의 몸집부터 줄여 적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도청은 폐기물 중간처리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압축 포장 폐기물을 처리하기도 했는데, 2019년 이 중 일부가 필리핀 등 해외로 불법 반출된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도청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2712t의 폐기물이 필리핀 세부로 보내졌다 반송됐고 이 가운데 1782t은 필리핀 민다나오에 재수출되기도 했다. 2017년 계약한 9262t 중 8637t은 군산항 물류창고에, 625t은 광양항 부두에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보관되기도 했다.

당시 제주환경운동연합 측은 “도청에선 이를 알고 있었지만 방치, 묵인했다”며 “지자체는 여전히 제2공항 건립에만 몰두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압축 포장 폐기물 생산현황에 따르면, 제주시청은 지난해에도 3587t의 압축 폐기물을 위탁처리했다. 아직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온전히 처분하는 데엔 부담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제2공항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격화하는 분위기다. 최근엔 여론조사 실시를 앞두고 도와 도민, 도민과 도민 간 잡음이 적지 않았다. 앞서의 강원보 신산리 이장은 “여론조사는 당초 전체 도민들을 대상으로만 실시하려 했다. 근데 성산읍을 따로 떼서 조사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이로 인한 실랑이도 있었다”며 “도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도청의 본심에도 의구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박찬식 제주제2공항 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은 “여론조사 문항을 두고서도 말이 많았다. 단순히 ‘제2공항 건립 찬반’이 아니라 ‘제2공항 건설과 기존 공항 확충 중 무엇이 적절하겠냐’고 묻자는 의견도 많았다. 만약 질문을 후자로 짰다면 여론조사 격차는 20~30%포인트까지 벌어지지 않았겠냐는 의견 등도 적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성산읍이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선정되면서 지역 내 10개 미만이었던 부동산중개업체는 현재 70여개까지 늘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지금의 찬성 의견이 사실상 이들 업체의 사장이자 외지인들이 주도한다는 의심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부동산 투기세력 가짜 지역주민 물러가라’ ‘제주도의 미래는 도민이 결정한다’ 등이 적힌 현수막이 마을에 내걸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민사회단체에선 환경수용력을 고려한 정책이 집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측은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감소했지만 정작 쓰레기 배출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인구·관광객 증가, 각종 개발사업에 따른 부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환경·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하며 미래 수용력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당장의 제2공항 확충 등 양적 팽창에만 집중할 경우 쓰레기 문제 해결은 불가하다”라고 밝혔다.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면 제주도 사라진다”

앞서의 김형주 난산리 이장은 “제2공항 건립 부지는 495만㎡(150만평)이지만 공항 유지를 위한 주변 시설물까지 감안하면 제주 동부지역의 1322만㎡(400만평)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라며 “정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면 기존 환경 유지관리 방안 등부터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의회가 주관한 ‘현 제주공항 확장가능성 심층토론회’에선 제주공항 포화 사태를 두고 제2공항 건립 이외에 대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토론회 참석자였던 비상도민회의 측은 기존 공항의 근접평행활주로 신설과 보조활주로 연장, 항공교통시스템 개선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스위스, 독일 등에선 안전과 환경을 위해 시간대별 교통량 예측·조정 등으로 비행기 운항 횟수를 늘리기도 했다는 것이 당시 거론된 자료 내용이다.

국토부 측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해 제주도청과 환경부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후속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기엔 도내 폐기물처리 대안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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