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9시 44분, 세종대학교 철학과 윤지선 교수의 ‘서양철학 쟁점과 토론’ 온라인 화상 수업. 윤 교수와 40여 명의 학생이 접속해 있는 방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갑자기 ‘X페미 교수’ 등 욕설, 혐오 표현과 남성의 성기 사진 등을 30여분간 채팅창에 올리기 시작했다. 윤 교수가 “다 캡처해서 법적 대응하겠다”고 하자, “응, 난 촉법소년”이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했다. 촉법소년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만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말한다. 윤 교수가 강제로 방에서 퇴장시켰지만, 비밀번호가 없는 방이라 침입자는 5번이나 다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화상 수업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루리웹·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캡처해 올리기도 했다. 윤 교수는 25일 이 침입자를 모욕·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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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여파로 초·중·고, 대학교의 수업이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되면서 외부인이 불법으로 난입해 수업을 방해하는 이른바 ‘줌바밍(Zoom-bombing)’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줌바밍은 대표적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 수업에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의미(bombing)다. 이런 화상 수업들은 별도의 인터넷 주소나, ’123 1234 1234′처럼 숫자로 된 회의 ID를 알아야만 접속할 수 있다. 학교에서 수강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유하지만, 일부 수강생 혹은 다른 경로를 통해 외부로 유출돼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다. 침입자들은 화상 수업에 들어와 수십~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보는 창에 욕설, 음란물을 남기는 식의 ‘폭탄’을 떨어뜨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수업이나 회의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다.

줌바밍은 작년에도 간혹 있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놀이형 범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25일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자, ‘줌 수업 테러해주실 분’ ‘중딩 줌수업 침공’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해당 글에는 화상수업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 입장 비밀번호와 함께 ‘침입’을 부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달 초 개학 이후에만 10개 넘게 올라와 있었다. 세종대 윤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줌바밍은 단순한 외부인의 만행이 아니라, 남초 사이트 등에 자신이 수업에 침입한 것을 인증하는 ‘놀이’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한 고등학교가 진행 중이던 ‘대학입시 설명회’ 온라인 화상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400여 명의 학생이 설명회를 경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명이 들어와 채팅창에 욕설을 남기고 극우 커뮤니티 ‘일베’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카메라에 비췄다. 디시인사이드의 한 게임 게시판에 ‘OO고 줌수업 테러 드가자~’란 제목의 글이 올라온 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해당 고교 관계자는 “당시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많이 놀랐다”며 “지금도 선생님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줌바밍은 추가 범죄로도 이어진다. 온라인 화상수업은 교수·학생의 얼굴, 이름이 화면상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이를 입수해 온라인상에 유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인공지능(AI) 기술로 수업에 참가한 이들의 얼굴을 다른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fake)’ 범죄도 벌어진다. 박정현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교사의 얼굴을 무단으로 캡처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려보거나,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해 희화화하는 등 교권 침해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생은 수업 중에 마스크를 쓰거나, 화면을 꺼놓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학생 김모(21)씨는 “교양수업처럼 수강생 수가 많고 타 학과 학생들과 같이 듣는 수업은, 화면에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출석을 확인할 때만 몸통이 잠깐 나오게 한다”며 “화면을 일부러 어둡게 하거나, 어깨만 나오게 하는 친구도 많다”고 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코로나 확산으로 화상 수업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던 범죄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며 “학교 수업에 침입하는 줌바밍 범죄는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복합적 범죄가 성립해 단순 범죄보다 더 무거운 민사·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