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내 출입 금지를 고수한다면, 이 아파트를 ‘개인별 배송 불가 아파트’로 지정하겠다.”

8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1번 출구 앞 공터에 파란 조끼를 입은 택배기사 9명이 모였다. ‘택배노동자에게 갑질하는 입주자 대표회 규탄한다’ ’20km 넘는 손수레 배송, 살인적인 노동입니다' 같은 피켓도 보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주최했다. 최근 5000세대 규모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가 단지 내 차량 진입을 금지하면서, 택배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 된 게 발단이 됐다.

8일 오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금지는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철회하지 않으면 이 아파트에서 개인별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택배 기사들이 일반 택배 차량과 저상 택배 차량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서 택배노조는 “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 금지는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철회하지 않으면 오는 14일부터 이 아파트에서 개인별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입구로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 1일부터 안전 사고와 보도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단지 내 택배 차량 진입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지하 출입구를 이용하거나,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라고 했다. 그러자 첫 시행일에 택배 기사들이 상자 수천개를 단지 후문에 돌탑 쌓듯 두고 가, 주민들이 단체로 나와 박스를 찾는 촌극이 벌어졌다.

노조 측은 “손수레를 쓸 때 배송 시간이 3배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저상 차량에서는 몸을 숙인 채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는 물론 목이나 어깨, 무릎 등 근골격계 질환 발생이 심각해진다”고 했다. 이 아파트의 지하 출입구 높이는 2.3m 정도다. 통상 높이 2.5m 안팎인 택배 차량이 출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택배 기사들은 이 아파트에 출입할 때 높이 1.27m ‘저상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차량 내부가 작아 허리를 굽힌 채 일을 해야 해 몸에 무리를 준다는 것이다.

8일 오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금지는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철회하지 않으면 이 아파트에서 개인별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손수레로 배달할 경우 물품 손상 위험도 커진다고 했다. 노조 측은 “비나 눈이 오게 되면 택배 물품의 손상이 발생하기 쉽고, 손상이 되면 택배 기사 개인이 변상해야 한다”며 “악천후 속 손수레 배송을 하는 택배 기사들은 말 그대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저상 택배 차량을 이용하려면, 택배 회사 지원 없이 기사 스스로 돈을 들여 차량을 바꿔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저상 탑차로 개조하거나 교체하는 비용도 모두 택배 기사들의 몫”이라며 “차량에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줄어 택배터미널에서 물건을 싣고 배송 지역으로 오는 일을 추가로 해야만 한다”고 했다.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 진입을 못해 발생한 '택배 대란' 현장인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후문에 5일 오후 지상주차통제 안내문만 설치되어 있다.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구 높이는 2.3m로 이보다 높은 택배차량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왼쪽은 지하주차장 입구. /뉴시스

이런 논란을 빚는 아파트는 고덕동 아파트 뿐만이 아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한 아파트는 수도권·부산·대구 등 전국 179곳이다. 이들은 “해당 아파트는 1년 간의 유예기간을 줬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라며 “전형적인 ‘갑질 행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