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불법 농성 집회를 해산하려던 경찰의 시도가 여권(與圈) 인사들의 현장 방문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등 여권 관계자들이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대사관 앞 불법 집회는 더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친북·반미 성향의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주도하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대학생 긴급 농성단’ 소속 5명은 16일 오후부터 주한 일본대사관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 트윈트리타워 앞에서 2박 3일째 ‘불법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규탄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떤 신고도 없었던 명백한 불법 집회”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곧바로 기습 농성에 돌입했다. 또 “항의 서한을 일본 대사에게 전달하겠다”는 명분으로 지속해서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일본대사관 건물 앞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외교 관례 등을 고려해 경찰이 집회를 허가하지 않는 곳이다. 이런 사정으로 그동안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성격의 집회는 주로 대사관에서 100m가량 떨어진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려왔다.
경찰은 불법 농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자진 해산을 유도하고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산 명령을 내린 뒤 농성장 내 추가 인원 진입을 차단하는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최소한의 생필품 외에 농성장으로 각종 물품과 전기를 들여오는 것도 차단했다. 시위대는 경찰에 농성 인원 추가 투입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경찰의 ‘고립 작전'은 여당 의원들이 농성 현장을 방문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양이원영·전용기 세 의원은 17일 오후 차례로 현장을 찾아 농성자들을 격려하고 지지 발언을 했다. 의원들은 시위대를 둘러싸고 농성장 진입을 막는 경찰에 직접 항의했다. 양 의원은 시위대가 철야농성을 지속할 수 있도록 추가적 방한용품 등 반입을 허용할 것을 경찰에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17일 밤에는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도 농성 현장을 방문해 시위대를 격려했다. 범여권 의원 4명이 반나절 동안 잇달아 불법 농성을 격려·지원하면서, 집회 해산을 유도하는 경찰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셈이다.
의원들이 다녀간 이후 대진연 농성자들은 “친일 경찰” “경찰의 근거 없는 불법적 공무집행” 등을 주장하며, 철야농성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장을 방문했던 의원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장 사진과 함께 “대신 싸워주는 학생들이 고맙다”며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돕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온라인상으로도 지원에 나섰다.
현장 경찰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경찰은 “명백한 집시법 위반 사항인 미신고 집회를 밤새 겨우 통제했는데, 여당 의원들이 방문하면서 한순간에 공들인 게 무너졌다”며 “일본대사관 정문 불법 농성은 전례 없는 일인데 여당 의원들이 방문해서 순식간에 합법처럼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은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외교공관은 절대 보호를 해야,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도 보호받을 텐데 국회의원들이 타지에 있는 우리 외교관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꼴 아니냐”고 했다.
여권 인사들의 불법 농성집회에 대한 지지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대진연에 따르면 이재정 민주당 의원, 김원웅 광복회장, 민족문제연구소 등 여당·친여 인사들이 추가로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