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2일 오전 4시쯤, 인천광역시 중구 한 주점(酒店)의 실외 창고. 한 남성이 주위를 둘러보다 창고 출입문을 따고 들어갔다. 잠시 뒤 나온 그의 손에는 닭발과 돼지 껍질, 통조림 8묶음이 들려 있었다. 시가 5만원 정도였다. 보름 뒤 같은 시각, 그가 또 나타났다. 역시 식자재를 들고 나가려던 그는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절도범은 지난해 실직한 A(45)씨였다. 그는 경찰에서 “일자리를 잃고 허리·어깨까지 다쳐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며칠을 굶었다”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는 아무 전과도 없는 초범(初犯)이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훔친 게 모두 음식인 생계형 범죄”라며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참작했다”고 했다.
코로나 장기화 속 생계형 범죄에 내몰리는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이 늘고 있다. 20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강력·폭력·교통 범죄 등 주요 범죄는 전년보다 6~9%가량 줄었지만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포함된 재산 범죄만 5% 늘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재산 범죄는 대표적인 ‘불황형 범죄’로, 경기가 어려울 때 늘어난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들이 범죄에 손을 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2일, 강원도 춘천시의 한 무인(無人) 상점. 60대 남성 B씨가 과자와 캔커피 등 9000원어치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 결과, 그는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과자·음료수 등을 훔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자영업을 했던 그는 201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치료비 4000만원을 대느라 재산을 모두 소진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려 이력서를 여러 곳에 넣어봤지만 모두 탈락했다. 그는 “심혈관 질환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빈속에 먹을 수가 없어 식료품을 훔쳤다”고 했다.
지난해 5월, 폐지 줍는 일을 하는 C(79)씨도 한 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팔레트’ 묶음을 주워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가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받은 돈은 2000원. CCTV를 확인한 경찰은 “고의성이 없어 보인다”며 즉결심판에 넘겼고, 재판부도 선고유예 처분을 내리면서 그는 간신히 전과자 신세를 면했다.
이들처럼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여러 지표에서 나타난다.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경범죄로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은 이들 가운데 생활고를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벌금형의 집행유예)받은 이들의 비율은 줄곧 늘고 있다. 2018년 1.4%에서 이듬해 2.8%가 됐고, 작년(1~10월)에는 2.9%였다.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코로나 장발장’ 증가의 이면에는, 코로나 여파로 ‘밑바닥 복지’가 작동하지 않은 탓도 있다. 작년 3월 경기 수원시의 한 고시원에서 5000원 상당의 구운 계란 18개를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힌 이모(49)씨는 “코로나 때문에 건설 현장 일이 끊겼는데, 무료 급식소마저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가까이 물밖에 못 마셨다”고 했다. 코로나 감염 위험 때문에 무료 급식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범행에 나섰다는 것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들의 경범죄 처벌을 감경(減輕)해주는 경찰의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역시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2019년 심사자는 6888명이었지만 작년에는 6217명으로 10% 가까이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생활형 범죄자가 줄었다기보다 시민단체, 변호사, 경찰 등이 모두 모여야 하는 심사위원회의 특성상 모임을 자주 가지기 어려웠다”며 “올해는 좀 더 자주 열 수 있도록 일선 경찰서에 지침을 하달하고 있다”고 했다.
가난에 내몰릴수록 복지에서 더 멀어진다. 특히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거리 노숙인’은 정부·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지원금 수령 대상임에도 해당 정보를 몰라서 못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거리 노숙인 가운데 서울시의 재난긴급생활비를 받은 사람은 27.4%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이도 절반 수준(53.8%)이었다. 못 받은 이들은 ‘신청 방법을 몰라서’ ‘(지원금이) 있는 것 자체를 몰라서’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생계형 범죄자를 단순히 선처하는 것보다는, 이들을 복지 시스템으로 연계해 재범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은 절도라도 ‘생계형 절도’는 처벌로 그 고리를 끊을 수 없다”며 “초기에 생계형 범죄를 분별해, 청년 범죄자에겐 자격증 수강 같은 구직 활동을 지원하고 중·장년층과 노인은 공공 부조를 비롯한 복지 시스템과 연결하는 식으로 이들을 양지(陽地)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