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만 여자를 지켜요?”
초등학교 6학년 교사 이모씨는 최근 양성평등 교육시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예로 들며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학생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이런 반발을 들었다.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학생 3~4명이 손을 들어 “그건 평등이 아니에요” “선생님 메갈(페미니스트 비하 용어)이에요?”와 같은 질문과 항의를 쏟아낸 것이다. 교사 이씨는 “선생님은 남학생, 여학생 모두 평등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하고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인천의 중학교 교사 박모(여·45)씨는 지난달 교무실에 찾아온 남학생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이 학교에는 탈의실이 없어 체육시간을 앞두고 여학생은 교실, 남학생은 화장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는다. 이를 두고 남학생들이 “왜 남학생만 여학생 눈치를 봐야하느냐”고 따진 것이다. 박씨가 “남자가 여자를 배려하는건 당연하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선생님도 페미니스트냐”며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결국 박씨는 학급 회의를 열고 이를 투표에 부쳤다. 학생들은 격주로 남녀가 번갈아가며 화장실에서 환복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공정과 성차별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대남’(20대 남성) 현상이 조명 받는 가운데, 10대 학생들에게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에 반발해 ‘역차별’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남학생이 늘어난 것이다. 교사들은 “4~5년전 페미니즘이 유행하면서 여기에 감화되는 여학생들이 늘어났다면, 최근에는 남학생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경남 창원의 중학교 체육교사 김모(48)씨도 지난해 10월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키채로 공을 드리블 후, 골대에 슛을 넣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점수를 부여하는 ‘플로어볼’이라는 운동의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일부 남학생들이 “이건 힘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남녀 평가 기준이 다르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체육 수행평가에서 여학생들 기준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학생들이 여기에 불만을 느끼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면서 “공 다루는 것은 남학생이 익숙하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여학생들이 모두 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학생들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6년 성희롱·성추행 신고로 자치위원회가 열린 사건은 385건이었지만 2019년에는 620건으로 3년만에 60% 이상 늘었다. 서울의 한 보건교사 김모씨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성폭력 신고를 하게된 것은 반길 일이지만 함께 농구를 하다 남학생 손이 여학생 가슴을 닿았다거나, ‘XX년’과 같은 욕설로 성희롱·성추행 신고가 접수되는 등 판단이 어려운 사건들도 함께 늘었다”면서 “이런 경우엔 애초에 남·여 학생들간 적대감이 커서 합의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학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운동가 오세라비(본명 이영희)씨는 “최근 10대 남학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20·30대 남성의 반감보다 더 높다”면서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로만 묘사하는 양성평등 교육으로 이들을 설득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