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보복 주차 공식 사과문.’
7일 오후 2시 20분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엔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사과문을 올린 이는 지난 1일 서울 강서구의 홈쇼핑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흰색 벤츠가 (주차 공간) 두 칸을 혼자 차지하는 ‘민폐 주차’를 했다고 폭로하며 벤츠 주차 사진을 올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폭로 글을 통해 “화도 나고 주차할 곳도 없어 당시 벤츠 옆에 내 차량을 바짝 붙여 주차했는데, (홈쇼핑) 쇼호스트가 나타나 ‘이거 나 엿 먹으라고 이렇게 (차) 댄 거지’라고 (적반하장으로) 소리쳤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내 폭로가 다 허위였다’는 사과 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사과문에서 ‘다른 주차 공간이 있었음에도 제가 보복 주차를 한 것이 맞고, 벤츠 차주가 충분한 사과를 했는데도 더 골탕 먹일 생각에 한두 시간가량 일부러 차를 빼주지 않았다’고 썼다. 다른 주차 공간이 있었는데도 벤츠 차주에게 고의로 ‘보복 주차’를 해놓고,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주인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는 거짓말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상의 폭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파급 효과가 크고 빨라 인간의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는 면이 있다”고 했다. 최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유명인을 타깃으로 한 허위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유명인일수록 온라인상의 파급 효과가 커 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프로배구 선수였던 박상하씨는 지난 2월 ‘중학교 때 박상하에게 14시간 갇혀 폭행을 당했다’는 인터넷 폭로 글 때문에 사과하고 은퇴까지 했다. 그러나 폭로 글을 올렸던 사람은 박씨 은퇴 이후 “사실 박상하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학폭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그를 엮어 언급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론화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여론의 관심을 끌려고 허위 폭로를 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 1월엔 ‘개그맨 이정수의 아랫집에 사는데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폭로 글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이씨의 아래층 거주자도 아니었고 그와 일면식도 없었다. 또다른 ‘유명인 엮기’였다. 벤츠 두 칸 주차 사건이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차 주인이 유명 쇼호스트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허위 폭로의 대상이 주로 유명인이라면, 폭로 내용은 학교 폭력, 층간 소음, 주차 등 일상적인 것들이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상적 소재는 공분을 이끌어내기 가장 좋다”고 했다.
특정인을 겨눈 허위 폭로의 근원이 ‘사회 양극화’라는 해석도 있다. 양극화가 초래한 경제적 박탈감으로 인해 ‘돈 잘 버는’ 쇼호스트, 연예인, 운동선수에 대한 이질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 순식간에 분노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고급 외제차의 상징인 벤츠의 ‘무개념 주차’는 대중의 감정, 분노를 자극할 만한 소재”라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주장은 진위 파악이 어렵고 걸려도 처벌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허위 폭로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거짓말을 막는 사회적 압력이 약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