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에서 식용(食用)으로 판매되는 밍크고래를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국내 유일의 고래 문화 특구인 울산 장생포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고래는 포획이 금지돼 있지만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는 시중에 유통할 수 있다. 하지만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되면 이런 ‘혼획(混獲)’ 고래도 시중 유통이 금지된다. 과거 국내 최대 포경(捕鯨) 기지였다가 고래 문화 특구로 변신한 장생포 상인들은 “생계 수단을 빼앗고 고유 음식 문화를 없애는 보호종 지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9일 오후 찾은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 문화 특구의 한 고래 고기 전문점은 30테이블 중 손님이 있는 곳이 4개뿐이었다. 3대째 고래 고기 장사를 해온 안영경(48)씨는 “코로나 사태로 손님도 없는데 정부가 밍크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한다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며 “우리에겐 죽으란 소리”라고 했다. 현재 특구 일대 고래 고기 전문점은 9곳이고, 전국적으로 고래 고기 음식점은 120여곳으로 추산된다.
현재 정부가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한 고래는 남방큰돌고래 등 10종이다. 해양수산부는 범고래와 흑범고래 등 2종을 오는 6월 보호종으로 추가 지정한다. 내년부터는 밍크고래와 큰돌고래·낫돌고래 등을 순차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생포 주민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밍크고래를 보호종에 추가하는 것이다. 특구 일대 가게들이 주로 혼획된 밍크고래를 중매인에게 낙찰받아 판매하기 때문이다. 밍크고래는 마리당 가격이 4000만원부터 1억원에 달하는 것도 있어 ‘바다의 로또’라고 불린다. 해경 등에 따르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밍크고래는 매년 80여 마리다.
정부는 그동안 고래 포획과 판매 금지 조치를 계속 강화해왔다. 해수부는 지난 11일부터 ‘고래 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시행했다. 죽은 채 떠밀려 왔거나 불법 포획된 고래의 위판과 공매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바닷가로 떠밀려 온 고래는 위판이 가능했고, 불법 포획된 고래도 해경 수사를 거친 뒤에는 공매할 수 있었는데, 이 조치로 인해 이런 고래들은 앞으로 전량 폐기해야 한다. 여기에다 보호종 지정 대상까지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보호종이 되면 포획과 보관·위판·유통이 전면 금지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고래 보호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혼획 고래 유통을 지속하면 미국과 유럽에 수산물을 수출하는 데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동물보호 단체들도 고래 유통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장생포 주민과 고래 고기 음식점 업주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 주쯤 해수부를 찾아 항의하고, 보호종 지정 반대 서명 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장생포 토박이 이정국(59)씨는 “국내 상업 포경이 금지된 1986년 이후 폐허가 된 마을이 2008년 고래 특구로 개발되면서 연간 100여만명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살아났는데, 고래 고기 판매가 금지되면 마을은 또 쇠락할 것”이라고 했다. 주민 강모(58)씨는 “고래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 반발이 거세지자 해수부 관계자는 “어업이나 음식업 영업에 영향이 적은 고래부터 순차적으로 보호종으로 지정할 계획”이며 “밍크고래의 경우 자원 조사 결과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편 일본은 2019년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고, 상업 포경을 31년 만에 재개했다. 충분한 개체 수가 확인된 고래종(種)이 있고, 포경 문화가 일본의 전통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일본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개체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밍크고래 등에 한정해 포획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밍크고래 추정 개체수는 2만513마리로, 일본 어민들은 매년 120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