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밤 10시 20분, 서울 성북구 A대학. 밤늦은 시각인데 학생회관 앞 광장에선 100여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벤치와 계단 등에 모여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왁자지껄한 대화,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교내 음주를 하는 32팀 가운데 5명 이상 앉은 일행은 6팀이었다. 광장 주변에 ‘실외 취식·음주 금지’ ‘마스크 의무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2m 유지’ 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광장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던 전모(27)씨는 “학교 앞 술집에서 1차를 하다 10시쯤 나왔는데, 술이 부족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왔다”고 했다. 박모(26)씨는 “10시에 ‘먹자골목’ 영업 끝나면 손님 절반 정도는 학교 쪽으로 향한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동대문구 B대학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본관 앞 계단에는 50여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나눠 앉아 소주·맥주, 컵라면, 과자 등을 먹고 있었다. 계단에서 맥주를 마시던 신입생 이모(21)씨는 “학교 행사가 전부 취소되다 보니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것 같아 이렇게라도 아쉬운 맘을 달래는 것”이라고 했다. 교내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차모(23)씨는 “매일 밤 10시쯤 되면 학생들이 네댓 명씩 무리를 지어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간다”고 했다.
‘코로나 셧다운’인 밤 10시 이후, 대학 캠퍼스 곳곳에선 이런 술자리가 많이 벌어진다. 대학가 술집에서 ‘1차’를 하다 가게 문을 닫으면 학생들이 캠퍼스로 향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날씨가 풀리면서 이런 일들이 더 잦아지고 있다. 대학 인근 한 편의점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밤마다 술, 안주를 사가는 학생들이 30~40팀 정도는 된다”고 했다. 학교 주차 관리를 하는 한 직원은 “24시간 개방돼 있다 보니 최근 밤에 학교를 찾는 학생들이 2배 정도로 늘어났다”며 “학생들의 방역에 대한 마음가짐이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풀린 것 같다”고 했다.
현행법상 5인 이상이 아니면 ‘교내 음주’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학교 차원에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교내 음주 행위를 막고 있다. 대학도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못하고 있다. 21일 밤 11시쯤, ‘캠퍼스 폴리스’ 문구를 붙인 흰색 순찰 차량이 A대학 광장에 도착했다. 외주 경비업체 소속 직원들은 확성기를 들고 “교내 음주 행위와 취식 행위는 금지돼 있습니다” “각자 정리해 해산해 주세요”라고 했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 1~2팀 정도였다.
5명 이상 모인 한 일행은 잠깐 눈치를 보다가 바로 옆 다른 벤치로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다. 법적 단속 권한이 없는 직원들도 해산은 못 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B대학 관계자도 “경비 인력의 권한은 밤에 건물에 들어가는 걸 막는 정도지, 학생들이 야간에 건물 밖 벤치나 계단에 앉는 것까지 제지하긴 어렵다”고 했다.
관할 지자체, 경찰도 손을 놓고 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캠퍼스는 대학 사유지”라며 “5인 이상 신고나 학교 측의 협조 요청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것 없이 학생들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나가 단속하긴 어렵다”고 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도 “학교 요청을 받고 5인 이상 모임 과태료 고지서까지 갖고 갔지만 실제로 부과한 적은 없다”며 “최대한 학생들 반발이 없도록 계도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경찰도 “방역 위반 단속은 구청 업무”라고 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코로나 장기화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학생들도 캠퍼스 생활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며 “학생들이 캠퍼스로 모여드는 것에 대한 방역 관리가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방역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고민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