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에서 한복을 입은 재학생들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교내식당으로 가고 있다. /최원우 기자

우리나라 최고 명문고 중 하나로 꼽히는 민족사관고가 개교 25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한복을 입고 영어를 쓰는 그 학교다. 늦은 밤 기숙사가 강제 소등되면 화장실이나 복도 불빛으로 공부하는 모습으로도 유명해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2025년부터 자사고, 외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폐교 문제가 불거졌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사고는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원도 학생만 선발해야 한다. 전국에서 영재를 모집해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 목표인 학교의 존재 의미가 크게 훼손된다.

최근에는 민사고 교장 한만위씨가 “민사고가 폐교돼 좋은 인재를 키우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에 큰 손실”이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댓글 4200개가 넘게 달리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민사고 동문 중에도 모교 폐교에 찬성하는 이들이 꽤 있다. “모교가 사라지는 건 안타깝지만, 교육 불평등을 일으켜 학벌사회를 조장해선 안 된다”는 식의 논리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폐교에 찬성하는 기고를 올린 졸업생도 있다.

민사고는 존속해야 할까, 사라져야 할까. 사실 기자도 민사고를 졸업했다. 모교를 주제로 다루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회 이슈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민사고를 졸업해 민사고 교단에 서는 동문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민사고 폐교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았다. 처음엔 언론에 나서기 조심스럽다며 고사하던 그를,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인터뷰할 수 있었다.

민사고 정문에는 오른쪽에 충무공 이순신, 왼쪽에 다산 정약용의 동상이 서 있다. 민사고가 지향하는 인재상이다. /최원우 기자

◇이순신, 정약용 키워내겠다는 학교

지난달 24일 방문한 민사고는 18년 전 입학 당시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학교 정문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민사고가 지향하는 대표 인재상이다. 학교 진입로를 따라서는 동상 받침대들이 줄지어 있다. 언젠가 민사고 출신이 노벨상을 받으면 기념상을 올리려고 미리 만들어둔 것들인데, 아직은 전부 비어 있다.

청록색 기와를 얹은 왼쪽 건물이 다산관, 오른쪽이 충무관이다.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이다. 그 뒷편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기숙사다. /최원우 기자

청와대를 연상시키는 청록빛 기와를 얹은 건물 2동이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이다. 이름은 충무관, 다산관이다. 두 건물 앞에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황소희(32)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황씨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학교는 변한 게 없죠?”라고 했다. 황씨는 2005년 민사고에 입학해 2년 만에 조기 졸업했고, 2015년 다시 교사로 모교에 돌아온 7년차 사회 선생님이다. 민사고 교사 중에 유일한 모교 출신이다.

황씨가 학생들과 수업하는 교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학생들이 끼적인 낙서로 빼곡한 화이트보드가 눈길을 끌었다. 황씨에게 인터뷰 예상 질문을 간단히 보냈었는데, A4용지 7장에 빽빽하게 생각을 정리해 가져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선 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민사고에 들어가 선생님까지 됐는지 궁금했지만, 우선 폐교 문제에 대한 생각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제자들이 낙서로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 앞에 선 황소희씨. /최원우 기자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 필요하다”

민사고는 확실히 공교육과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석·박사 수준 교사 1명 당 학생 5~7명으로 밀도 있는 수업을 한다. 그만큼 학비(기숙사비 포함)도 연간 2800만원 정도로 비싸다. 특권교육, 귀족학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의 평등을 위해선 사라져야 맞는 걸까.

황씨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선 누군가가 모두를 대신해 의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엘리트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그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주’(엘리트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줄어들고, 특권만 누리려는 ‘특권층’이 늘어난다는 게 황씨 생각이었다. 황씨는 “사회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으니까 마치 엘리트가 나쁜 것처럼 인식된다”며 “오히려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기관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민사고 설립자인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은 애초에 영국 이튼사관학교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 양성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사재를 1000억원 넘게 쏟아부었다. 파스퇴르가 부도나면서 재정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전교생에 무상 교육을 제공했었다. 그는 강연 때마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를 교육해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 배 이익을 얻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1999년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 교육관 앞에서 최명재(가운데) 설립자가 1기 졸업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민족사관고 제공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민사고의 교훈이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교훈의 의미를 곱씹어보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요즘처럼 의무보다 권리를 챙기려는 시대에 조국이니, 민족 같은 얘기를 꺼내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나마 민사고는 이런 문화와 전통이 계승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황소희씨 교실에 걸려 있던 민사고 교훈. /최원우 기자

황씨는 “학벌주의는 학벌 조장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좋은 학교를 없앤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민사고를 없앤 다음에 서울대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학벌을 보상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등 떠밀 듯 로스쿨, 의대에 보내려 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은 보상으로 치부하게 하는 구조 자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그나마 이런 흐름에 거스르는 교육을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곳이 민사고 아닌가 싶다”고 했다.

◇“자기 목소리 내고 경청하는 자세 생활화된 학교”

실제로 황씨는 그런 교육을 받았을까. 부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황씨의 학창 시절 별명은 ‘잠소희’였다. 다른 동기들이 새벽 1~2시까지 공부할 때도 혼자 일찍 잠들었다. 수업시간에도 자주 졸았다. 황씨는 “한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저를 부르더니 ‘그렇게 치열함이 부족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한마디 하셨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솔직히 어떻게 민사고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런 황씨에게 학창 시절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하루 종일 수다 떨던 시간들”이었다. 들어보니 보통 수다가 아니었다. 주제가 ‘욕구와 욕망의 차이가 뭐냐’, ‘왜 대학을 가야 하느냐’, ‘고시는 꼭 비판받아야 마땅한가’ 같은 식이었다. 기숙사 학교다 보니 등·하굣길, 쉬는 시간, 식사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이런 주제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보통 학교였다면 “그런 거 따질 시간에 공부나 해라” “뭐가 그렇게 진지하냐. 진지충이냐”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황씨는 “민사고에선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펼치고, 그걸 경청해주는 자세가 생활화돼 있었다”고 했다. 한번은 동기 한 명이 아침 애국조회를 비판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민족 지도자 교육을 표방하던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도 상당수 학생이 “그런 주장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용기 있는 목소리 응원한다”면서 동기를 옹호했다고 한다. 황씨는 “동문 중에 학교 폐교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곳이 민사고라는 학교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 짬을 내서 교육관 복도에서 공부 중인 민사고 재학생들. /최원우 기자

◇고교 때부터 통진당 해산심판 결정문으로 토론하는 수업

황씨는 민사고 시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황씨는 처음엔 남들처럼 대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배운 대로 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입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 대학원에 들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했다. 석사를 마치고 다시 취업 준비 중에 민사고 교사 공고가 떴다. 마침 교원 자격이 없어도 석사 이상 학력이면 지원자격이 됐다. 황씨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주저 없이 지원했다”고 했다.

토론식 수업을 지향하는 황씨의 사회과목 수업은 파격적이다. 이번 학기 주제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결정문의 이해’다. 347쪽 분량 결정문 주요 내용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민주주의, 자유주의, 입헌주의 같은 굵직한 개념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황씨는 “교과서에 나온 추상적인 개념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쉽게 산만해지더라. 삶과 밀접한 연관 있는 주제를 던졌을 때 집중도도 올라가고, 이해도 빨랐다”고 했다. 다른 교사들도 재량을 발휘해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들인다고 한다.

황씨는 기숙사 학교라는 환경도 큰 장점으로 꼽았다. 민사고는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지만, 올해 다시 전면 대면수업을 재개했다. 황씨는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학생, 쉬는 시간에 놀러 오는 학생들과 어울릴 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수업 이외 시간이 수업 못지않게 중요하더라”고 했다. 교사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됐지만, 학생들과 유대는 다시 돈독해졌다.

민사고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관 '충무관' 앞에 선 황소희씨. /최원우 기자

◇“좋은 교육 늘려야지 왜 없애나”

황씨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행복은 스스로 옳고,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게 황씨의 생각이다.

혹자는 물을 수 있다.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민사고 졸업생이 얼마나 되느냐고. 황씨는 “전체 졸업생 3명 중 1명 만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성공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전원이 같은 생각이라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세뇌 아닐까”라고 했다. 비싼 학비에 대해선 “좋은 교육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비싼 학비가 문제라면 정부 지원으로 부담을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 방침이 바뀌지 않는다면 민사고 폐교는 시간문제다. 황씨는 “민사고가 끝내 폐교된다면 작은 독서 교실을 열고 싶다. 입시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교육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새삼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황씨에게 배워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선생님을 배출한 것만으로도 민사고 교육은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없애려고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학교는 한번 없애고 나면 다시 만드는 건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