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5)씨는 늦잠을 잔 지난 9일, 출근하기 위해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카카오T’ 앱을 켜 택시를 불렀다. 5분이 지나도 배차(配車)가 되지 않았고, 앱에는 ‘근처에 바로 배차되는 블루가 있어요!’란 광고 문구가 떴다. 최대 3000원을 더 내면 바로 배차를 해주겠단 뜻이었다. 다급한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요금을 냈고, 곧 ‘카카오T’란 글씨와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이씨는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라 일단 웃돈을 주고 탔다”면서 “하지만 정말 광고 문구처럼 근처에 블루 택시만 있었는지, 배차를 쥐고 있다가 추가금을 내니까 그때 연결해준 건 아닌지 의문”이라고 했다.
33년 차 개인 택시기사 김모(66)씨는 월 9만9000원짜리 카카오 유료 요금제 가입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 가입하면 가고자 하는 방향의 고객 호출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고, 실시간 호출이 많은 지역의 지도도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요즘은 카카오 콜을 안 받으면, 시내를 2시간 돌아도 기본요금 손님 하나 받기 힘들다”면서 “돈 내야 콜 먼저 받을 수 있다는데, 왜 우리가 돈 내가면서 손님을 태우게 된 건지 모를 노릇”이라고 했다.
IT(정보기술) 기업 카카오가 국내 택시 호출 시장의 80%를 장악한 ‘카카오 택시’ 시대. 사기업인 카카오가 손님과 택시기사 중간에서 사실상 모든 배차권(配車權)을 틀어 쥐면서, 이제 웃돈을 줘야 택시를 빨리 탈 수 있고 기사도 돈을 내야 손님을 태울 수 있게 됐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나온다.
택시 업계를 혁신하겠다며 2015년 택시 시장에 뛰어든 카카오는 국내 택시 시장을 ‘호출 중심’으로 바꿨다. 처음엔 손님과 기사 모두에게 무료였다. 그 덕에 현재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일반 2800만명, 택시기사 23만명)을 가입자로 확보했다. 하지만 시장 과점(寡占)에 성공한 카카오가 2019년부터 조금씩 유료화에 나서면서 공공 요금인 ‘택시 요금’ 체계는 사실상 무너졌다. 택시 기본요금은 3800원(서울 기준)이지만, 이젠 택시를 빨리 타려면 최대 3000원의 웃돈을 내야 한다. 택시 기사들에게 목적지를 노출하며, 손님을 골라 태우는 ‘승차 거부’ 문제를 심화한 카카오가 이를 결국 유료화로 해결한 셈이다. 혁신은 사라지고 중간에 낀 카카오만 배를 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카카오는 소비자와 택시기사 사이에서 양쪽을 상대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소비자 대상으로는 ‘쾌적, 친절하고 자동 배차되는 택시’라는 명분으로 최대 3000원의 웃돈을 받는 ‘블루’와, ‘배차 성공률이 높다’는 이유로 1000원을 더 받는 ‘스마트호출’이 대표적이다. 카카오는 이런 유료 호출 서비스를 만든 뒤 자사 앱에서 우선 노출하며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연내 흑자 전환을 하고, 내년에 상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주말인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택시 호출 앱인 ‘카카오T’를 켜고 강남역 가는 택시를 부르자, 호출 리스트에 유료 호출 서비스 ‘블루’(예상 요금 1만2600원)가 ‘근처에 바로 배차되는 블루가 있어요!’란 광고 문구와 함께 가장 먼저 떴다. 이어 모범(1만9800원), 블랙(2만9400원)이 보였다. 소비자 입장에선 셋 중 가장 싼 블루를 무의식적으로 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가격엔 일반 택시에 없는 이용료 1000원이 포함돼 있다. ‘블루’는 카카오가 자신들과 가맹 계약을 맺은 블루 택시에만 배차해주는 독점 서비스다. 여기 가입하려면 택시기사는 매출의 2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한산한 주말이라 손님과 더 가까운 곳에 비(非)가맹 택시가 있어도, 웃돈을 받고 더 멀리 있는 가맹 택시를 불러 주는 것이다. 수수료가 없는 일반 호출은 ‘호출 리스트’ 화면을 위로 끌어올려야만 보이는 하단에 배치돼 있다.
택시기사들도 불만이 많다. 카카오가 뛰어든 이후, 국내 시장이 ‘콜택시 시장’으로 완전히 변해버려 이제는 앱 없이 손님을 태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임봉균 전국택시노조연맹 사무처장은 “이제 ‘배회 영업’으로는 손님을 못 태운다는 인식이 생겼고, 결국 배차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수료 상품에 가입하거나 가맹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카카오만 좋아진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가 수수료 내는 가맹 택시에 콜을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고객이 블루가 아닌 ‘일반 택시 호출’을 선택해도, 배차권을 쥔 카카오가 가까이에 있는 일반 택시가 아니라 먼 거리의 가맹 택시 ‘블루’를 우선 배정해주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일반 호출의 경우 일정 반경 안에 있는 가맹·비가맹 택시 모두에 콜이 가는데, 가맹 택시의 경우 5초 이내에 거절을 하지 않으면 자동 배차가 되는 구조”라며 “이 사이에 일반 택시가 콜을 잡으면 일반 택시에 배차가 된다”고 했다.
택시 요금은 물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공공요금이다. 그래서 시의회, 택시정책위원회, 물가대책심의위원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결정한다. 하지만 카카오가 시장 과점을 무기로 본격적인 수익화에 나서면서, 공적 협의를 거쳐 책정된 택시 요금 체계를 흔든다는 우려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카카오가 투자금 회수와 수익 확보에 본격 나서면서, 택시기사와 이용자 모두가 기존에 없던 비용을 추가로 내게 됐다”며 “플랫폼 업체가 양자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공적 요금 체계를 흔들 여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