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서 한국에 귀화하는 게 꿈이었어요. 풍등(風燈)만 안 날렸으면 되는데…. 내가 제일 잘못했어요.”
2018년 10월 7일. 스리랑카인 디무두 누완(30)씨는 3년 전 그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철근공(工)이었다. 오전 10시 30분쯤, 공사장 입구에 ‘빨간색 풍등’이 놓여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풍등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어요. 스리랑카엔 풍등이 없거든요.” 신기해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고 풍등은 날아갔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풍등은 300m를 날아가,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의 저유소(貯油所) 주변에 떨어졌다. 건초에 불이 옮겨붙었고 불씨가 저유 탱크 내부에 튀면서 탱크가 폭발했다. 총 11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3년째 재판을 받고있다. 작년 12월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오늘(15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경찰은 대형 화재를 발생시킨 중대 과실이 있다며 그에게 중실화(重失火) 혐의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실화(失火) 혐의로만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풍등 하나에 저유 탱크가 폭발할 정도면 공사 측의 안전 관리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사고 이후에도 당시 다니던 회사(금풍건설이엔씨)에 그대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회사는 기소돼 재판받는 외국인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변호사 선임까지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그는 “사장님, 소장님이 ‘걱정하지 마, 괜찮아’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회사가 변호사를 수소문하던 중 최정규 변호사 등 6명이 ‘무료 공익 변론’을 맡겠다고 나섰다.
조정현(47) 금풍건설이엔씨 이사는 “사고 난 지 일주일 후 공기(工期)를 빨리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디무두는 그 큰 일을 겪고도 아무 내색 없이 목공부터 철근까지 다방면으로 묵묵히 일했다”면서 “이런 친구를 어떻게 회사 이익만 생각해서 내치느냐”고 했다. 우창우(50) 관리부장은 “디무두는 외국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편인데 40여명의 외국인 동료들 챙기는 맏형 노릇을 했다”며 “한 명이 몸이 아파 밥을 못 먹자, 자기 점심시간 쪼개서 택시 타고 시내에서 약을 사오던 친구”라고 했다. 나용환 대표이사도 “디무두는 가족”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디무두씨를 돕고 나선 것은, 그가 ‘나쁜 마음 먹고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무두씨는 요즘 경기도 용인의 터널 발파(發破) 현장에서 일한다. 콘크리트 자재를 운반하고 호스를 까는 일을 한다.
2015년 한국에 홀로 건너온 그는 재판 중엔 출국이 금지돼 6년째 모국에 가지 못하고 있다.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 말간디(52)와 뇌 신경 문제로 손을 심하게 떠는 아버지 자야위르(55)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사고 후 첫 한 달간은 막막해서 밤마다 울었고, 지금도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디무두씨의 잘못만은 아니다'는 여론도 있다”고 하자 그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긴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에요. 다만 일부러 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월 200만원 정도를 번다. 벌금 1000만원도 열심히 돈을 모으면 낼 수 있는 액수다. 그가 걱정하는 건 액수보다는 벌금형 그 자체다. 재판이 끝나 벌금을 내면 출국 금지가 풀려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있지만 벌금형 전력 때문에 취업 비자는 다시 받지 못한다. 한국으로 다시 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좋아 귀화를 꿈꿨던 그에게 아직 한국은 ‘고마운 나라’로 남아 있다. 그는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와 돈 버는 처지에 이런 큰 문제를 일으켜 너무 죄송합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살려고 했는데 왜 이걸 날렸는지 모르겠어요. 재판이 끝나면 스리랑카에 가서 부모님 얼굴을 뵙고 싶어요. 제가 실수했는데 변호사님, 회사 동료분들, 모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한국인분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