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 3명 중 1명(36%)은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00년 비슷한 조사에서 11%였던 수치는 2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뛰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부가 서로 잠자리를 갖지 않는 ‘섹스리스(sexless)’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2일 연세대 염유식(사회학과) 교수와 최준용(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성생활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나온 연구 결과다. 2000년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세계 성태도 및 성행동 연구’를 진행할 당시 한국인들의 섹스리스 응답은 11%였다.

연구팀은 올 1~5월 서울 지역의 만 19세 이상 남녀 218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염유식 교수는 “그간 성관계를 논하는 것 자체에 반감(反感)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번 조사의 응답률이 50%가 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국에도 성에 대해 진솔하게 응답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주제의 연구 응답률도 10~20% 수준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6%였다. 성별로는 여성(응답자의 43%)이 남성(29%)보다 더 많았다. 이유는 미묘하게 달랐다. 성관계를 갖지 않은 남성의 절반 이상은 ‘파트너가 없어서’라고 했다. 반면 여성의 절반 이상은 ‘흥미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남성은 ‘못’ 했지만, 여성은 ‘안’ 한 셈이다. 염 교수는 “비혼, 저출산 풍조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서로 간 합의가 필요한 성관계에서 이젠 여성의 주도권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또 여성이 출산 이후 남편과 잠자리를 멀리하고, 자녀에 많은 신경을 쏟으며 이들과 함께 자는 경향이 높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섹스리스는 노부부(老夫婦)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염 교수는 “특히 20대가 60대만큼이나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20대 남성은 ‘지난 1년간 성관계를 했다’는 응답(58%)이 전 연령층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20대 여성도 ‘성관계를 했다’는 응답(57%)이 60대(47%)에 이어 둘째로 낮았다.

염 교수는 “20대의 경우 취직 준비, 공부, 알바 등을 하면서 경제·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또 자위 기구나 인공지능(AI) 등 이성(異性) 외에도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고,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섹스를 하지 않고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섹스는 육체적 만족 외에 정서적 만족도 있는데,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가 자위·AI 등의 방법을 찾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포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20대의 비(非)섹스가 앞으로 지속될 것인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득수준도 성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스로 평가한 자신의 계층이 중상층인 남성(79%)은 하위층(67%) 남성보다 성관계를 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중상층 여성(65%)의 성관계 역시 하위층 여성(53%)보다 잦았다. 시간·비용 등 여유와 출산·자녀 부양 능력 등의 요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며 “코로나보다는 비혼 풍토와 페미니즘, 여유가 없는 삶 등이 섹스리스에 더 큰 변수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