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5시 50분,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횟집. 이날은 수도권에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 금지’가 적용된 첫날이었다. 4인짜리 테이블 두 곳에서 식사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주인 정모(69)씨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두 테이블에 차례로 다가간 그는 빈 병부터 조용히 치웠다. 그러곤 맥주를 한 병씩 건네며, 미안한 표정으로 “이거 서비스인데 마지막으로 마시고 나가 주셔야 돼요”라고 했다. 한 테이블은 5시 57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20대 남녀 넷이 앉은 다른 테이블 손님은 6시가 돼도 꿈쩍하지 않았다. 정씨가 다시 찾아가 “빨리 일어나셔야 돼요. 6시 넘었어요”라고 하자, 손님들은 그제야 남은 잔을 비우더니 6시 3분에 가게를 나섰다. 정씨는 “6시면 저녁 장사 피크 타임인데, 찾아온 손님들을 내쫓아야 하는 입장이 되니 참 난감하다”며 “앞으로 2주간은 계속 얼굴 붉힐 일만 있을 것 같아 차라리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첫 날인 이날 고강도 방역 지침이 적용된 데 따른 혼란상이 수도권 곳곳에서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헬스장의 매니저 염모(42)씨는 입장하는 회원들에게 일일이 “오늘부터 러닝머신은 시속 6㎞까지만 뛰셔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방역 당국이 ‘고강도 운동을 하면 침방울이 퍼져 코로나 확산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러닝머신 속도를 시속 6㎞ 이하로 제한한 탓이다. 염씨는 “사실 고(高)중량, 고반복 웨이트 트레이닝은 러닝 못지않게 숨이 차는데 정부는 단지 유산소 운동이라는 이유로 침이 더 많이 튈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회원들에게 안내를 해주면서도 민망하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헬스장 트레이너 정모(31) 씨는 “마스크 착용 여부는 눈에 쉽게 띄기라도 하지만, 러닝머신 속도는 육안으로 시속 5km인지 7km인지 구분도 안 되고 직원들이 이걸 일일이 감독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4단계 적용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저녁 장사를 하는 식당, 술집 등이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유명 한식집 입구에는 ‘당분간 점심만 운영합니다’란 안내가 붙어 있었다. 18년간 어머니와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사장 조모(40)씨는 “이번 주 저녁에 원래 9팀 예약이 있었는데 7팀이 취소했고, 나머지 2팀도 먼저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취소하겠다’고 하더라”며 “매출이 20% 아래로 떨어져 직원들과 긴급 회의를 해 저녁 영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주 점심 매출을 보고 계속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4단계 기간 동안은 영업을 잠정 중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상견례 등 가족 행사 위주의 한정식집 사장들은 “저녁에 2인만 모일 수 있다는 건 사실상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7월부터 모임 인원이 6~8인으로 차츰 완화될 것으로 보고 저녁 약속을 잡았던 직장인들은 약속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카드사에서 근무하는 양모(26)씨는 이번 달 저녁 약속 3개를 모두 취소했다. 양씨는 “집과 회사에선 외출을 자제하라는 분위기고, 저녁 6시 이후에 나가봤자 3명 이상이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지도 못해 사실상 퇴근하면 곧바로 귀가하는 ‘코로나 통금’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일본계 회사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전모(27)씨는 “오늘부터 전면 재택근무에다, 이번 주에 잡혀 있던 고객사 미팅 5개도 모두 취소됐다”며 “삼성, LG 같은 큰 고객사에서는 먼저 취소 연락이 왔고 나머지 고객사들과도 일정을 잠정적으로 미루기로 협의했다”고 했다.
코로나로 연이어 타격을 입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 PC방·음식점·카페 등 20여개 업종 단체로 구성된 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긴급 회의를 갖고 “14일 오후 11시에 야간 차량 시위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종민 비대위 대변인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그냥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며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각자 차를 몰고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비대위 측은 차량 500여대가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