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택가 분리수거장. ‘자원 관리 도우미’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남성 2명이 의자에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주민들에게 올바른 플라스틱 폐기물 분리 배출을 안내하는 것. 이날 주민들이 ‘플라스틱함’에 라벨이 붙은 페트병이나 비닐을 수차례 잘못 버렸지만 이들은 의자에 그냥 앉아 있었다. 자원 관리 도우미 A(62)씨는 “구청에서 되도록이면 민원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하더라”며 “괜히 민원이 생길 수 있어 계도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 성동구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B(63)씨는 “하루는 음식이 묻은 비닐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고 알려줬더니 ‘아줌마가 뭔데 그래요’라고 하더라”며 “또 큰 소리를 들을까 봐 말을 걸기가 무섭다”고 했다.
자원 관리 도우미는 전국 지자체가 올해 922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공공 일자리’다. 코로나 이후 늘어난 플라스틱 폐기물 분리 배출을 돕는다는 취지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에 8800여 명이 활동 중으로, 하루 6시간을 일하면 월 최대 16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현장에선 존재감이 크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권신구(31)씨는 “매번 분리수거함 옆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다”며 “도우미란 게 있는지 지금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런 유명무실한 공공 일자리는 ‘자원 관리 도우미’뿐만이 아니다. 공공 근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카페 등에는 ‘하는 일 없이 앉아있다 퇴근해도 되는 편한 알바’ ‘이 정도 노동 강도에 이 정도 시급이면 완전 꿀’이란 평가가 공공연히 나온다.
지난해 정부가 1조2000억원을 투입한 ‘희망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던 이모(28)씨는 “초등학교에서 ‘학생 보호 방역 활동’을 한다고 안내받았는데, 정작 가보니 알코올 소독제로 애들 신발장 몇 번 닦아주는 게 전부였다”며 “하루 5시간을 일하는데 대부분은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보냈다”고 했다. 이씨는 그렇게 1주일에 5일을 일하고, 100만원 초반의 월급을 받았다.
정부가 운영 중인 ‘공공 빅데이터 청년 인턴’도 마찬가지다. 2개월간 교육을 받고 전국 공공기관에 배치돼 4~6개월간 인턴 생활을 하는 제도다. 월급은 세전 183만원. 9월 배치를 앞두고 교육 중인 인턴 C(23)씨는 “두 달째 녹화 영상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솔직히 내가 현장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이전 기수로 일한 친구한테 들으니 단순 ‘숫자 입력’ 업무를 한다던데 스스로 ‘빅데이터 인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고 했다. 현재 5명의 인턴이 근무 중이라는 한 기관 관계자는 “한글 문서 중 일부 숫자를 엑셀에 입력하는 일을 맡기는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