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시에서 고깃집을 3년간 운영해온 구모(57)씨는 지난 1일 가게를 철거했다. 한때 하루 매출 150만~200만원을 올린 잘나가는 가게였지만, 코로나 이후 매출이 10만~20만원 선으로 10분의 1토막 났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 4단계 이후엔 하루 매출이 0원인 적도 있었다. 냉장고부터 탁자, 의자 등 집기를 모두 철거·매각해 텅 비었지만 이 가게는 아직 법적으로 ‘영업 중’이다.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씨는 다음 달에 지급되는 5차 재난지원금(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을 받고 나서 폐업 신고를 할 예정이다. 지원금은 영업 제한·금지 기간과 매출 감소율에 따라, 최소 4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까지 나온다. 그는 “1년간 월세를 못 내 보증금 5000만원을 다 까먹고 빚도 1000만원 있다”며 “나라에서 주는 돈이 기껏 몇 백만원이지만 이 돈도 절박해 폐업 신고를 미룬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폐업 신고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逆說)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행정안전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가 본격 확산한 지난해 폐업 신고한 전국 일반 음식점은 5만4437곳으로 2019년(5만9530곳) 대비 8.6% 감소했다. 올 1분기(1~3월) 일반 음식점 폐업 신고 역시 1만1437곳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9% 줄었다. 상황이 안 좋은데도 폐업을 미루거나 사실상 폐업을 하고도 여러 이유로 폐업 신고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김일선(48)씨는 “코로나 때문에 갚아야 할 월세 빚만 2000만원 이상”이라며 “직원들 전부 자르고 나 혼자 아침 7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16시간 넘게 꼬박 일해도 적자인 상황”이라고 했다. 그가 폐업을 꺼리는 것은 ‘권리금’ 때문이다. 그는 “빚 때문에 권리금을 1000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됐을 때 폐업하려고 한다”며 “일단 부모님한테 400만원 빌려서 밀린 세금부터 갚았고, 긴급 대출도 받아둔 상태”라고 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을 때 문을 닫겠다’는 슬픈 눈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폐업 상담·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서자 1만681명이 몰렸다. ‘언제, 어떻게 폐업해야 가장 이득이 될 것인지’를 상담해주고 폐업 비용 일부를 지원해주는 자리다. 올 들어선 6월까지 4453명이 추가로 상담과 지원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폐업의 경계선에 있는 자영업자가 워낙 많다 보니, 올해 추경 예산을 확보해 8월부터 지원 대상을 더 늘린 상황”이라고 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폐업하면 사실상 투자금인 권리금을 모두 잃을 뿐 아니라 대출도 일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는 “한국 소상공인의 70%가 40~60대인데, 이들에겐 현재 운영하는 점포가 최종 정착지에 가깝다”며 “폐업 이후 재기(再起)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심적 부담도 큰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불경기에도 폐업을 미루고 계속 지원금으로 ‘버티기’에 들어가면 자칫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폐업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벌써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계속 지불하면서 그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오래가면 개인 파산·회생 같은 도산(倒産)이 급증하고, 경제 전반에도 위기가 찾아올 위험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