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의 한 맥줏집. 굳게 잠긴 문 앞에는 소방서에서 붙인 노란색 ‘출입 통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는 하얀 국화 꽃다발 4개가 놓여 있었고, 문에는 ‘편히 쉬세요’ ‘천국 가셔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라고 적힌 메모지들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엔 카드사, 대출회사에서 보낸 우편물이 널려 있었다. 이곳은 코로나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자 본인이 살던 원룸을 빼서 직원들 월급을 내주고,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 A(여·57)씨의 가게다<본지 13일자 A10면>.
A씨 가게 건너편에서 카페를 하는 박모(54)씨는 “나도 저녁까지 영업을 하면서 A씨 가게 손님들을 보는데, 거리 두기 4단계가 된 이후로는 손님이 크게 줄어 하루에 한두 테이블이 전부인 날도 있더라”며 “한동안 문을 열지 않아 어디 가셨나 했는데, 근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참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1998년부터 꿋꿋하게 가게를 운영해온 24년 차 자영업자 A씨가 코로나를 견디다 못해 결국 세상을 등졌다는 사연이 12일 알려지자, 전국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단순한 자살이 아닌 사회적 죽음” “잊혀서는 안 될 죽음”이라며 추모(追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같은 날 전남 여수시의 한 치킨집 점주도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12일부터 인터넷 공간에선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회원 수 82만여명의 자영업자 카페엔 두 자영업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영업자들의 글과 댓글 300여건이 올라왔다. 자영업자들은 “어제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일을 했다” “내 상황도 비슷해 남 일 같지 않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국 자영업자 80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선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으로 바꾸는 추모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리본 사진을 내걸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잇따라 올리며, 서로 ‘너무 힘들지만 우리 조금만 더 참자’는 식의 위로를 주고받고 있다.
숨진 자영업자에게 근조 화환을 보내고 싶다는 뜻도 이어졌다. 조지현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공동대표는 “대전,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조화를 보내고 싶다는 전화가 어제(12일)부터 15건 이상 들어왔다”며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 실제로 조화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추모 카페를 만들고, 검은 리본 운동을 하는 등 자영업자분들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 동구에서 족발집을 하는 정모(39)씨는 “올해 1월에 우리 매장에서 불과 30m쯤 떨어진 닭꼬치집 사장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며 “나도 대구에서 족발집과 호프집을 같이 하는데 지난달에만 1500만원 적자가 나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자영업자 비대위 측은 “13일 오후 5시까지 접수한 결과 지난 6~8월 사이에만 자영업자 최소 15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유흥업 10명, 요식업 4명, 여행업 1명이다.
이창호(45) 전국호프연합회 대표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방역 정책으로 매출은 반의 반 토막으로 급락했고, 영업제한 강화 조치가 강화된 지난해 말부터는 버틸 힘조차 뺏긴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