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전지법 법정에 절도 혐의로 붙잡힌 홍모(85)씨가 섰다. 그는 작년 7~8월 세 차례에 걸쳐 대전 동구의 한 마트에서 홍삼 캔디 1봉지, 설탕 1봉지, 접착제 1개를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총절도액은 1만원 남짓. 재판부는 “피해 규모가 크지 않고 생필품·식품을 절취한 생계형 범죄임을 고려했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 7월 경기 수원지법에선 마트 두 곳에서 고구마 2봉지, 3㎏짜리 쌀 포대, 요플레 등 4만7000원어치 물품을 훔친 백모(77)씨가 판사 앞에 섰다. 판사는 “고령의 나이에,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과 어렵게 생활하며 생계를 위해 저지른 잘못으로 보인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절도는 요새 경찰들 사이에서 ‘가성비 떨어지는 전통 범죄’라 불린다. 도둑질을 해도 취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은 데다, CC(폐쇄회로)TV가 많다 보니 발각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 새(2016~2020년) 절도 범죄는 20만2874건에서 17만9315건으로 11.6% 감소했고, 계속 줄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유독 61세 이상 고령층의 절도 범죄만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경제 위기에 내몰린 노인들이 견디다 못해 소액 절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5일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61세 이상 절도 범죄 피의자는 2016년 1만4021명에서 지난해 2만3141명으로 65% 늘었다. 같은 기간 19세 이하(-26%), 20~30세(-29%), 31~40세(-21%), 41~50세(-13%)의 절도 범죄는 모두 줄었다. 51~60세(5%)는 소폭 늘어난 수준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절도 범죄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고령층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길거리에서 자전거,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는 등 소액 절도나 생계형 범죄가 상당수”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5년 새 절도 범죄를 재산 피해액별로 나눈 결과 1000만원 이하, 1억원 이하 등 모든 구간에서 절도가 줄었지만 유독 1만원 이하 소액 절도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만원 이하 절도는 2016년 1만1506건에서 지난해 1만1971건으로 증가했다.
60세 이상 노인들의 절도 범행뿐만 아니라 거꾸로 이들이 ‘절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절도 범죄 피해자 수는 모든 연령대에서 감소했는데 61세 이상에서만 2만2252명에서 2만6918명으로 21% 증가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층의 빈곤율이 높은 상황에서 코로나로 양질(良質)의 일자리까지 사라지면서 어르신들이 생계형 절도로 내몰린 것”이라며 “먹고살기 힘들어 절도 피의자가 되고, 아프고 몸이 약해 절도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 등 경제적 취약 계층이 절도 범죄를 저지른 경우 피해 정도, 범행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식재판 대신 약식(略式) 즉결심판을 청구하고 있다”며 “생계형 경미 사범은 지자체의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 연계해주는 식으로 재범을 막고,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