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빌라 복도에 세탁물 수거함, 택배 상자 등이 쌓여 있다. /강다은 기자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라에 사는 김모(32)씨의 집 대문 양옆엔 쿠팡의 보랭(保冷) 배달가방인 ‘프레시백’과 택배 상자, 2L(리터)짜리 생수통 6개 묶음, 종량제 쓰레기봉투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모두 그의 양옆 이웃의 것이다. 앞집 입구엔 한 세탁 전문 업체의 ‘세탁물 수거함’이 놓여 있었다. 빨랫감을 넣어두면 업체가 세탁물을 수거하고, 세탁이 완료되면 다시 넣어놓는 비대면 서비스를 위한 것이다. 김씨는 “최근 1년 새 이웃에 배달되는 택배가 부쩍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복도에 내놓는 물품도 많아진 것 같다”며 “공동으로 쓰는 공간인데 쓰레기를 내놓는 등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아 불쾌하다”고 했다.

코로나로 아파트 복도가 점차 포화되고 있다. 과거엔 자전거나 유모차, 배달 온 신문·우유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된 최근 1~2년 새 택배를 직접 전달해주지 않고 문 앞에 놓고가는 ‘비대면 배달’이 보편화됐고, 쿠팡·오아시스 등 신선식품을 배달해주는 업체들이 친환경 전략의 일환으로 물품을 담았던 ‘다회용 보랭백’을 도로 회수해가면서 문 앞에 ‘짐’이 쌓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비대면 세탁물, 생활쓰레기 수거 서비스까지 생겨 나면서 아파트·빌라 복도가 더 복잡해진 것이다.

이에 따른 이웃 간 불만과 다툼도 생기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는 최근 한 입주민이 1층 공동현관에 사흘간 헌 옷이 든 박스와 비닐봉지를 방치했다가 주민 간 분쟁을 겪었다. 해당 아파트 관계자는 “옷 수거업체가 가져갈 때까지 밖에 방치한 것 같은데 ‘왜 공동 공간에 이런 걸 꺼내 놓느냐’는 주민들 항의가 많았다”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집집마다 문 앞에 보랭백, 택배박스를 쌓아둔 것을 보면 답답하고 불편하다” “택배 쓰레기에 음식물 쓰레기까지 다 내놔 난리도 아니다” 등의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갈등이 불거지자 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쿠팡은 ‘집 앞 보랭백을 빨리 수거해달라’는 이용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지난 7월 배송 직원들이 보랭백을 수거할 경우 최대 200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는 ‘당근’을 내놨다. 한 비대면 생활쓰레기 수거업체도 이용자들에게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주택 문화를 위해 수거 박스를 반드시 집 안에 두고 사용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아파트 복도·계단은 화재 시 다수가 대피하는 피난 통로로 쓰이기 때문에 물건을 쌓아두면 자칫 소방법 위반으로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관문 앞, 복도에 물건을 쌓아두는 것은 재난 시 자신뿐 아니라 이웃의 피난을 어렵게 만들어 피해를 키울 수 있다”며 “특히 소화전 같은 소방시설 앞에 짐이 있으면 화재 진압도 지연된다”고 했다.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의 이승태 변호사는 “공용공간은 원칙적으로 한 사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물건을 두는 것은 몰라도 상시적으로 내 공간처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웃 간에 원만하게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