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인근의 이른바 ‘남대문 쪽방촌’이 민간 재개발을 통해 철거되고 그 자리에 22층짜리 업무 시설이 들어선다. 재개발 구역 안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쪽방촌 주민을 먼저 이주시키고, 이후 철거와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서울 민간 재개발 사업에서 쪽방촌 주민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지내던 곳에서 다시 정착해 살도록 대책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22일 서울시는 전날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재개발 정비 계획 변경 결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은 지 50~60년이 지나 낡고 위험한 남대문 쪽방촌 일대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2027년까지 지하 10층, 지상 22층짜리 업무용 빌딩과 182가구가 지낼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의 남대문 쪽방촌은 6·25전쟁 이후 모여든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온 이들을 상대로 집주인들이 집을 쪼개 임대하면서 지금의 쪽방촌이 형성됐다. 한때 집창촌과 여관 등이 밀집했지만 정부 단속으로 대부분 사라졌고, 지금은 낡은 건물 19곳에 있는 쪽방에서 도시 빈민 230여 명이 살고 있다. 건물 붕괴와 화재 위험 때문에 여러 차례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이주 대책을 놓고 사업자와 쪽방 주민이 맞서면서 지금까지 사실상 방치돼왔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전문가 조언도 받아 ‘선(先) 이주’ 방식의 새 이주 대책을 마련했다. 민간 사업자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을 재개발 구역 안에 짓고 기부채납하면 새로 짓는 업무용 빌딩의 용적률을 높여주겠다고 제안해 합의를 봤다. 이에 따라 현재 쪽방촌에 있는 복지시설인 ‘쪽방 상담소’ 자리에 내년 하반기부터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2024년까지 쪽방촌 주민 대부분을 입주시킬 방침이다. 독립생활이 어렵거나 입주 자격이 없는 주민은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건물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임시로 머무르게 한 뒤 다른 곳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한다. 주민들이 떠나면 쪽방촌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업무용 빌딩을 건설한다.
이날 오후 남대문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들은 “쫓겨나지 않고, 근처 새 집에서 살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 18년 전 쪽방촌에 들어왔다는 손모(51)씨는 “장애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기초수급자로 받는 돈으로 한 달 25만원 월세 내고 산다”며 “내년에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게 해 준다니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종이 상자 줍는 일로 근근이 생계를 꾸린다는 권모(68)씨는 “살던 곳에서 철거를 두 번 당해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다시는 떠나지 않아도 된다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서울시는 “남대문 쪽방촌 사례는 정비 계획의 새로운 모델로, 다른 지역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의 이번 결정으로 서울역 앞 쪽방촌 두 곳이 모두 첨단 주거 및 업무시설로 변신하게 됐다. 양동구역 쪽방촌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동자동 쪽방촌에 대해서는 지난 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주도하는 재정비 계획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