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는 걸어서 1분, 뛰면 15초면 가는 거리 아닌가요?”
남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한 뒤 석 달간 스토킹에 시달렸던 한모(24)씨는 21일부터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전 남자 친구는 폭력을 쓰지는 않았지만,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직장과 집 근처에서 서성이며 한씨를 지켜보고 따라다녔다고 한다.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 요청에 따라 가해자에게 ‘피해자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스토킹 피해자들은 “이 100m는 피해자에겐 두려울 수밖에 없는, 너무 짧은 거리”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100m 접근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건 스토킹 처벌법뿐만이 아니다. 성범죄 피해를 당한 아동·청소년과 가해자(청소년 보호법), 아동 학대를 당한 피해자와 가해자(아동 학대 처벌법), 가정 폭력을 당한 피해자와 가해자(가정 폭력 처벌법)에 대해 관련 법은 모두 이 같은 ‘100m 룰’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거리가 피해자 보호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0m 접근 금지 규정이 처음 적용된 것은 가정 폭력 범죄”라며 “과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가정 안에서 최소한의 분리조차 안 되던 시절에 만들어진 100m 규정이 지금까지 내려와 접근 금지의 기준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00m는 사실상 성인 남성이 15초면 뛰어갈 수 있는 거리기 때문에 안전하고 충분한 분리 조치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100m 거리를 늘리려는 법안들은 그동안 꾸준히 발의돼 왔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아동 성범죄 피해 아동의 주거지 등으로부터 1㎞ 이내에 가해자 접근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도 지난 3월 같은 법의 접근 금지 거리를 10㎞로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황보 의원은 “100m는 상대방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지나치게 짧은 거리”라며 “가해자의 권리보다 피해자 보호가 명백히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법안들은 ‘다른 선행법들이 모두 100m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제복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은 “특히 아동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비동거인인 경우가 절반 이상인 만큼, 접근 금지 거리를 100m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일본은 피해자의 연령과 범죄 특성, 행위의 중대성 등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접근 금지 거리를 정한다. 미국에선 주(州)별로 피해자로부터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자체 거리 규정을 최소 300m, 600m 등으로 정해놓고, 이를 기준으로 법원이 자율적으로 접근 금지 거리를 정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10m와 허허벌판인 100m 거리 중 어느 것이 더 안전하겠느냐”며 “직선·곡선 거리, 장애물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 100m 규정보다는 피해자의 요청이나 일상 활동 범위, 담당 경찰의 설명 등을 고려해 법원이 접근 금지 거리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 만들어진 100m라는 기준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 기준이 타당한지 논의하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