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49)씨는 지난 1일부터 무료로 주던 캔음료를 1000원씩 받고 있다. 손님들이 당연히 무료라고 여기는 음료수에 돈을 받는 게 부담돼, 시행 4개월 전인 지난 6월부터 가게에 ‘음료 서비스 유료화를 10월부터 시행한다’는 포스터를 붙여 왔다고 한다. 그는 “15년 전에 1500원이었던 당구비가 지금도 1700원”이라며 “코로나도 있고 임차료, 전기료까지 매년 10% 이상씩 오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음료수 값이라도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울산시 동구의 한 중국집 메뉴판에 그릇당 받는 별도 포장비가 적혀 있다(왼쪽 사진). 경기도 한 당구장에는‘음료 서비스 유료’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독자 제공

정씨의 가게뿐만이 아니다. 대한당구장협회는 최근 각 당구장을 대상으로 무료 제공하던 음료를 유료화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협회의 정인성 전무이사는 “코로나 때문에 전국에 2만2000개 있던 당구장 가운데 최소 7000개 이상이 폐업했다”며 “죽어가고 있는 당구장 사장들을 살리기 위해 음료수 값이라도 받자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는 가운데 그간 당연히 ‘공짜’로 여겨졌던 생활 속 서비스들이 차츰 유료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에 매년 오르는 인건비, 재료비 인상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이 주력 메뉴·서비스값을 올리진 못하고 우회적으로 비용을 청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위드 코로나로 이제 간신히 손님이 돌아올까 기대하는 상황에서, 물가 올랐다고 어떻게 곧바로 메뉴 가격을 올리겠느냐”며 “그래도 워낙 남는 게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라고 말한다.

유료화 대상은 치킨에 딸려 오는 무·콜라, 고깃집의 불판 교환 등 다양하다. 원래 ‘포장’은 할인 대상이었지만, 이마저도 최근엔 유료로 바뀌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회전초밥집도 ‘포장비’를 받고있다. 초밥 40개까지는 포장비 1000원, 40개 초과는 2000원이다. 초밥집 직원 최모(25)씨는 “물가는 올랐지만 현 가격을 유지하려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며 “현금 결제를 하거나 포장 용기를 가져오면 포장비를 면제해준다”고 했다. 울산광역시 동구의 한 중국집도 코로나가 터진 작년 중순부터 메뉴 2개마다 포장비 500원씩을 받는다. 짜장면 6그릇을 시키면 포장비가 1500원인 셈이다. 가게 사장 서모(50)씨는 “코로나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포장비를 만든 것”이라며 “1000~2000원씩 받는 가게도 있던데, 우리는 그래도 최소한의 용기값만 받는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백화점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고깃집은 불판 교체에 990원, 야채 990원, 동치미 790원 등 추가 비용을 받다가 지난달 결국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았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도 이 같은 고민 글이 여럿 올라온다. “한국식 문화에서 반찬 비용을 별도로 부과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무료인 355mL짜리 콜라에 1000원 비용을 부과해도 될지 3개월째 고민 중입니다.” “저희는 치킨값은 못 올리고 결국 치킨무에 500원 받기로 했습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어차피 부담하는 돈은 같은데 차라리 음식값을 올리지, 부가 서비스에 돈을 받으니 기분이 상한다”는 불만, “코로나로 힘든 자영업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란 반응이 모두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건비,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자영업자들의 자구책”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자칫 ‘꼼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서비스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