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 펄어비스의 미혼 직원들은 작년부터 ‘집 청소 서비스’를 받고 있다. 매월 1차례 청소 전문 업체 직원이 와서 집을 치워준다. 생일, 크리스마스 등엔 10만원 상당의 선물도 받는다. 회사 관계자는 “2030 미혼 직원들이 비율이 높아 ‘사내 미혼 복지 공모전’을 열었는데 거기서 채택된 아이디어”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작년부터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건강검진 대상자를 ‘본인과 배우자’에서 ‘본인 외 가족 1인’으로 바꿨다. 또 미혼 직원들에게 ‘결혼기념일 축하금 10만원’ 대신 매년 회사 복지몰에서 쓸 수 있는 10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주기 시작했다. 은행 측은 “결혼과 출산을 당연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복지 혜택을 확대한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의 사내 복지 제도가 달라지고 있다.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 결혼기념일 축하 등 결혼·출산을 기본으로 짰던 기존 복지 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2030 젊은 직원들의 비혼(非婚)·만혼(晩婚) 풍조가 만연해지고,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결혼 안 했다고 왜 복지에서 배제돼야 하느냐”는 불만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기업 1년 차 직원 서모(24)씨는 “앞으로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자녀 학자금 지원 대신 차라리 당장 혜택을 받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이직이 잦은 IT(정보 기술)·스타트업 업계가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수공예 플랫폼 아이디어스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직원을 위한 ‘동물 동반 출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집에 반려동물을 두고 출근해야 했던 독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네이버 관계사 라인플러스는 직원들의 ‘밥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사내에서 밀키트와 밑반찬을 할인 판매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부쩍 신경 쓰는 복지는 ‘주거 지원’이다. 한 벤처투자사 관계자는 “특히 스타트업들은 집값 비싼 강남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직원들의 집값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대출 중개 앱 스타트업 핀다는 지난 10월 전 직원에게 최대 1억원 무이자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의류 쇼핑몰 카카오스타일도 대출 1억원까지 이자를 전액 지원하고, 매월 20만원까지 월세를 대신 내준다. 부동산 중개 앱 집토스는 부동산 중개료를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제주·남해 같은 휴양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사도 있다. 휴가와 일을 함께 하는 소위 ‘워케이션(Work+Vacation)’을 원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다. 동영상 후기 전문 스타트업 인덴트코퍼레이션은 최근 제주도에 2층짜리 독채 건물을 마련했다. 1층은 공용 업무 공간, 2층은 직원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개인 방이다.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 스토어링크도 제주 애월과 협재에 2층짜리 단독주택 두 채를 계약했다. 회사 관계자는 “부산, 강원 양양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복지 제도 대신 돈으로 주는 곳도 있다. 최근 쿠팡으로 이직한 A씨는 “연봉 협상을 하는데, 담당자가 ‘우리 회사는 복지제도가 없으니 이전 직장 복지 증빙을 갖고 오면 그만큼 연봉에 산입해주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업무 강도가 세지만 대기업만큼 연봉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파격적인 복지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연봉은 한번 올리면 낮추기 어렵지만, 각종 복지는 회사 사정에 따라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라고 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 이후 개발자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우수 직원을 붙잡아두기 위해 미혼,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내 복지 제도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제도는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