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7시간 녹취록’을 보도한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을 보고 있다./고운호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 아내 김건희씨가 한 유튜브 채널 직원과 나눈 통화 내용이 16일 방영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사생활 보호를 위해 한국 스마트폰도 애플 아이폰처럼 통화 녹음 기능을 삭제하거나 최소한 경고음을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한국에 내놓는 스마트폰은 통화 녹음 기능이 출고 때부터 기본 탑재돼 있다. 통화 시 화면에 뜨는 ‘녹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상대방 동의 없이도 몰래 녹음된다. 모든 통화를 자동 녹음하는 기능도 있다. SK텔레콤은 여기에 더해 녹음한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주는 시범 서비스도 작년 11월 시작했다. AI(인공지능)가 두 사람 간 음성 대화를 일종의 녹취록처럼 만들어준다.

반면 애플 아이폰은 통화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애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국 11주(州)에선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미국뿐 아니라 모든 판매 국가에서 해당 기능을 배제했다. 삼성도 미국 시장용 제품에는 통화 녹음 기능을 넣지 않는다.

구글은 통화 녹음이 허용된 국가에 한해 자사 스마트폰이나 전화 앱에서 녹음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녹음 버튼을 누르면 ‘통화를 녹음합니다’란 경고음이 나와 대화 당사자가 모두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다. 녹음을 중지하면 더 이상 녹음되지 않는다는 알림도 나온다.

한국에선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통화를 녹음하는 것이 만연하다 보니, 별다른 이유 없이 상시(常時) 통화 녹음을 하는 이도 많다. 사원증에 소형 녹음기를 달거나,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켜놓고 직장이나 일상 생활에서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모두 녹음하는 경우도 있다. 대화 녹음이 직장 내 괴롭힘, 폭언 등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늘 ‘상대방이 나와의 대화를 녹음해 유포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사생활 보호를 위해 통화 녹음을 할 때 경고음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이 같은 내용의 이른바 ‘통화 녹음 알림법’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한 명이 통화 녹음을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알림을 보내 통화 지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다만 통화 녹음을 무조건 알릴 경우 부당한 협박·폭력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힘들어지고, 불법 행위에 대한 내부 고발 등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란 반론도 나왔다.

한국에서 통화 녹음이 불법이 아니라는 건 ‘반만 맞는 얘기’라고 법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권리 침해로 민사소송의 대상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녹음 내용을 공개할 경우 대화 상대방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수 있다. 법무법인 일신의 하재섭 변호사는 “법원 판례는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상 ‘음성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통화 녹음에 정당한 목적이 없는 경우 사안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