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설을 앞두고 24일부터 총 5000억원 규모의 지역공공화폐 ‘서울사랑상품권’ 판매에 나섰다. 서울사랑상품권은 세금으로 구매 금액의 10%를 할인해주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어왔다. 이용자만 130만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날부터 서울사랑상품권을 구매⋅결제할 수 있는 앱이 신한은행과 신한카드, 카카오페이, 티머니 등 4개 대형 금융회사의 앱으로 제한되면서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이는 작년 11월 서울시가 입찰을 통해 서울사랑상품권 사업자를 한국결제진흥원에서 신한·카카오·티머니 등 4개사 컨소시엄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한국결제진흥원이 운용하던 제로페이 등 23개 결제앱은 이날부터 상품권 구매 때 사용할 수 없게 됐고, 대신 4개사 컨소시엄이 서비스하는 7개 앱으로만 서울사랑상품권을 구입⋅결제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이날 4개 앱에서 상품권 구매⋅결제가 가능해졌는데 ‘서울페이플러스’ ‘신한 쏠’ ‘티머니페이’ ‘머니트리’ 등이었다. 이들 결제앱을 사용하지 않던 사람들은 휴대전화 인증은 물론 계좌 정보까지 새로 입력해야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26)씨는 “서울시 사업인 줄 알고 작년 11월에도 상품권을 샀고 이번에 같은 걸 또 사는데,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고 했다. 일부 결제앱은 한때 먹통이 됐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상품권 발행 수수료를 낮추기 위해서 이뤄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사랑상품권은 액면가에서 10% 할인해서 판매하는데 그 차액은 국비와 시비로 메꿔진다. 재정 지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품권 발행 수수료를 1.1%에서 0.6%로 낮춰 80% 이상 예산을 절감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안팎에서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도입된 ‘제로페이’ 이용률을 낮출 의도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박 전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서울시 결제앱인 ‘제로페이’는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서울사랑상품권 판매가 결합하면서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실제 제로페이는 2018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누적 결제액이 1조3561억원이었는데, 이 중 1조145억원(75%)은 서울사랑상품권 결제액이었다.
하지만 서울상품권 사업자 교체는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우선 신한카드와 카카오페이 등 대형 금융사들이 영업을 하고 시민들의 구매 정보를 확보하는 데 서울상품권 사업이 발판이 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이번에 사업에 참여한 컨소시엄에 속한 금융사들은 이미 각종 가입 이벤트를 벌이며 회원 유치전에 나섰다. 신한카드는 추첨을 통해 편의점 상품권 5000원권을 주고 신한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하면 냉장고⋅세탁기 등 경품을 추첨해 주는 이벤트도 한다. 동작구 주민 조모(40)씨는 “동작구청이 세금 들여서 발행하는 상품권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한카드에 내 정보를 넘기는 걸 동의하라고 하니 가입하기가 싫어진다”면서 “서울시와 구청이 왜 신한카드 고객을 모아주냐”고 했다.
과거 ‘골목상권 침해’로 잇따라 논란이 된 카카오의 계열사 카카오페이가 결제 대행사로 참여한 것을 두고도 반감이 있다. 이미 모바일 QR 코드를 활용하는 간편 결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카카오페이는 온라인에서는 사업 확장에 성공했지만 식당이나 카페 등 오프라인 가맹점을 확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서울상품권 사업에 관여하면서 서울 시내 총 28만개에 이르는 가맹점에서 카카오 앱으로 결제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카카오가 서울상품권 사업에 관여하면서 얻은 결제 정보를 향후 다른 사업 확장에 쓸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핀테크 기업 대표도 “예전에 택시 등에서 그랬듯이 서울상품권 사업에서 나온 정보를 기존 사업에 활용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