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제부터 저를 ‘강루아’라고 불러주세요.”

인천시 연수구에 사는 김나윤(11)양은 지난 학기 학급 장기 자랑 시간에 담임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연예인 등이 원래 이름 대신 예명(藝名)을 쓰듯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이다. ‘강루아’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 쓰는 아이디에 어머니의 성씨 ‘강’을 합쳐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싶어서 지었는데 자주 쓰다 보니 학교 시험지에도 예명을 적은 적이 있다”고 했다. 같은 반 18명 중 15명이 김양처럼 예명을 지어 서로를 부른다고 한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예명 만들기 문화가 번지고 있다.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들과 예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더 친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본명이 아닌 ‘아이디’나 ‘대화명’ 등을 쓰는 인터넷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다 보니 이름을 하나 더 갖는 것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박모(11)양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명(초리구리)을 본떠서 ‘박초리’라는 예명을 쓴다. 박양은 “코로나로 친구들과 자주 못 봐 서먹한 경우가 있는데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인천에 사는 김효주(10)양은 예명이 ‘부각’이다. 좋아하는 음식 이름에서 땄다. “같은 반 친구 25명이 모두 예명이 하나씩 있다”고 했다.

이런 문화가 퍼지면서 “이제 아이들 예명까지 외워야 하느냐”며 당혹해하는 교사들도 나온다. 대구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 교사 A(32)씨는 “반 여학생 2명이 다가와 ‘제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본명을 말했더니, ‘그 이름 말고 저희가 쓰는 이름요’ 하더라”며 “아이들이 자기 예명을 모른다고 서운해하기도 해 되도록 외워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알파 세대(2010년 이후 출생자)는 앞으로 메타버스 등 가상 공간에서 여러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게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