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 없이는 걷지 못하는 박재홍(26)씨는 지난 1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임용고시 2차 면접 시험을 보러 갔다가 출입문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QR 인증, 체온 측정 등을 한다고 건물 출입구를 한 곳만 열어놨는데, 그 앞에 경사로는 없고 수십 개의 계단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은 채 목발을 짚어가며 이 계단을 15분간 끙끙대면서 올랐고, 땀에 흠뻑 젖은 채 면접을 봤다. 그는 “미리 공지라도 해줬다면 가족 도움이라도 받았을 텐데 방역이 중요하다지만 배려가 아쉽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장애인을 위한 방역과 배려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은 이미 2년째 각자도생 방역 중”이란 말까지 나온다.
대부분 건물이 출입구를 한 곳으로 제한하면서 장애인들이 박씨 같은 일을 당하는 건 부지기수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대학원생 장모(26)씨도 대면 수업이 있을 때 학교에 가는데 그때마다 애를 먹는다. 점자 블록을 따라 출입구에 도착해도 입구가 잠겨있기 일쑤라는 것이다. 장씨는 “정문 한가운데 문만 열어둔다든지 규칙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어떤 문을 열어두는지 들쑥날쑥하니 2년째 헤매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와 방역패스, 재택치료까지 방역 시스템 전반이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설정돼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청각장애인 장유호(29)씨는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 등으로 최근 2년 사이 선별진료소에 6번 갔다. 그때마다 보건소 직원과 승강이를 벌였다. 수어를 하는 사람이 현장에 아예 없는 데다, “청각장애인이라 입 모양을 보여달라”고 설명해도 직원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는 것이다. 장씨는 “장애인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차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며 “종이에 내용을 적어달라고 해서 겨우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최근 도입된 재택치료는 중증장애인에게 ‘공포 그 자체’다. 코로나로 열이 나도 체온을 재는 기초적인 절차조차 혼자 하기 힘든데, 확진된 장애인을 위한 전용 병상은 국립재활원의 50여 개가 전부다. 지자체에서 신청받는 ‘긴급 돌봄’ 역시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대기가 길어 이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보건소는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10일간 혼자 재택치료를 한 중증 시각장애인 김병수(57)씨는 “확진 판정을 받고 나니 며칠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막막했다”고 말했다.
방역패스도 장애인에게 높은 문턱 중 하나다. QR 코드 인식기가 비장애인 기준으로 높게 설치돼 있는 경우가 많아,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화면 각도를 맞춰가며 QR 코드를 인식시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시각장애인 배형남(65)씨는 “우리는 QR 인증을 누군가에게 대신 해달라고 해야 되는데, 점심⋅저녁 때는 직원들이 바쁘다고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장애 아동을 둔 학부모들은 새학기 등교가 고민이다. 지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장애 아동의 경우, 혼자 마스크를 오래 쓰고 있지 못해 감염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자꾸 벗는 게 친구들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적장애 딸을 둔 조영은(38)씨는 “아이들 상황을 생각하면 등교가 늘어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특수교육 인력을 확충해서 장애 아동끼리 소규모 수업을 하도록 하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사실상 지금 상황은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알아서 적응하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라며 “코로나가 곧 끝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세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