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 현장을 찾아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논의했다. 전장연이 이동권 문제로 시위를 벌인지 약 4개월만이다. 일각에서는 ‘뒷북 방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 오전 7시 30분쯤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 안은자 장애차별조사1과장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 있는 회의실을 찾았다. 박 사무총장은 “인권위도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여러 차례 권고를 해왔지만 사회가 변하지 않아 안타깝다”며 “오늘 면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장애인 이동권이 얼마나 소외된 문제인지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장연 측은 이날 면담에서 인권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고 한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번 시위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발언한 내용과 표현 방식은 명확한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이 문제를 지적하는 공식 입장을 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앞서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들의 이번 시위를 두고 “시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 투쟁”, “순환선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못 건드린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인권위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장연 측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탈시설 관련 예산 확보 촉구 등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서울 지하철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너무 늦은 방문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인권위 측은 “사무총장이 1월 1일자로 취임을 해서 공식 방문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며 “오늘 면담에서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인권위에서 비공식적으로 장애인들의 시위 현장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장 명의의 성명 발표에 대한 내부 검토를 할 예정이다.
인권위와 면담을 마친 전장연 측은 이날 오전 8시 20분쯤 경복궁역 승강기 인근에서 ‘제3차 삭발식’을 가졌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를 위한 인수위의 답변을 촉구한다!’라고 적힌 흰색 천을 입은 채 삭발을 진행했다. 권 대표는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삭발을 하게 됐는지 안타깝다”며 “21년 동안 장애인들이 ‘함께 살자’고 외쳐왔지만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삭발식 이후 휠체어를 탄 4명의 장애인과 전장연 관계자 20여명이 함께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오전 9시쯤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오전 9시 35분쯤 혜화역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동안 지하철 안팎에서는 이들을 향한 비난 목소리도 이어졌다. 일부 시민은 이들에게 “당신들 때문에 출근 못하면 책임질거냐”, “무임승차 하는 장애인들이 돈을 내면 승강기도 설치 되겠다”고 했다. 이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손을 올리며 위협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전장연은 이번 삭발식을 4월 20일까지 이어갈 방침이다. 전장연 측 관계자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해결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지하철을 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