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2시쯤 경기 안양시의 한 무료 급식소. 이광수(80)씨 등 70~80대 3명이 도시락 80개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이씨가 씻어둔 쌀을 밥솥에 담는 동안 김옥희(74)씨는 인근 학교에서 점심을 마치고 보내온 콩나물 무침, 탕수육 등 잔반의 포장 비닐을 뜯고 있었다. 유인순(70)씨는 미리 양념해둔 고기를 볶거나 음식을 담을 일회용기를 배치했다. 음식 준비에 걸린 시간만 2시간. 오후 4시쯤 되자 급식소 밖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 등 60여 명이 줄지어 있었다. 유씨는 “코로나 감염을 걱정해 봉사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도시락을 만드는 것”이라며 “70살인 내가 여기 막내”라고 했다. 이 급식소는 코로나 이전에는 자원봉사자 등 10명 내외를 지원받아 하루 평균 120여 명의 끼니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운영조차 위태로운 상황이다. 급식소 관계자는 “음식을 조리할 사람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올라 3월부터는 인근 고등학교에서 급식 후 남은 반찬들을 받아서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시민들이 식사를 위해 길게 줄 지어 서 있다./뉴시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20만~30만명대가 나오면서 취약 계층을 위한 전국의 무료 급식소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배식을 해야 할 직원들이 잇따라 확진돼 자리를 비우기 일쑤인 데다,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특성상 배식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급감해서다. 본지가 수도권 무료 급식소 20곳에 연락해본 결과 이 중 17곳이 식판에 식사를 담아주는 배식 대신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물가가 치솟아 음식 값이 더 드는 데다, 일회용기를 사느라 비용이 추가로 들어 급식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5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구로구의 곰두리무료급식소. 인근 복지 재단에서 매달 약 80만원을 후원받아 운영되는 이곳은 주 2회씩 50인분의 도시락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준식(77)씨는 “전기료, 수도료, 재료 값 등 고정비용만 겨우 부담하고 있던 상황인데 도시락으로 바꾼 뒤로는 매달 용기 값이 10만원씩 나가 적자가 날 지경”이라며 “일손도 부족해 찾아오는 봉사자들한테는 매번 ‘내일 꼭 나와야 한다’고 사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박삼례(67)씨는 “혼자 사는데 몸까지 불편해 밥 한 끼도 스스로 해 먹기 어렵다”며 “봉사자들이 눈에 보이게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취약 계층은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든, 부실한 도시락으로 대체되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이들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