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 있는 이른바 ‘노가리 골목’의 노포(老鋪) ‘을지OB베어’가 21일 새벽 법원의 강제 집행으로 철거됐다.
이 가게는 1980년 지금의 노가리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해 ‘노가리 골목의 원조’로 불리던 가게다.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의 1호점으로, 노가리 골목에서 가장 먼저 영업을 시작했다. 노가리와 생맥주를 파는 ‘노맥’으로 유명해졌는데, 이후 비슷한 가게가 근처에 하나둘 생겨나면서 지금의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형성됐다고 한다. 2015년 서울시는 노가리 골목 전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고, 이 가게는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을지OB베어와 이 가게가 세든 건물의 소유주 간 갈등이 시작됐다. 건물주가 임대 계약 해지를 통보한 후 을지OB베어가 떠나지 않자 소송전이 벌어졌다. 건물주 측이 지난 2020년 10월 최종 승소한 후부터, 강제집행 시도가 시작됐다. 최근까지 5차례는 가게 측과 이 가게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현장에서 철거를 막는 바람에 강제집행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날 6번째 강제집행으로 철거가 이뤄진 것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20분쯤 을지OB베어에 강제 집행을 하러 철거 용역 10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약 1시간에 걸쳐 가게의 간판을 내리고 가게 내부의 집기류 등을 모두 빼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가게를 지키고 있던 시민단체 관계자 등과 물리적 충돌도 생겨 일부가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찾은 을지OB베어 가게 입구에는 “본 건물은 21일 부로 강제집행을 실시해 부동산 인도를 완료한 건물로, 본 건물에 침입하는 자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부동산인도집행조서가 붙어있었다.
을지OB베어 측은 이날 오전 11시 가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강제집행을 비판했다. 장인의 가게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 중인 최수영(67) 사장은 “수십년간 지켜온 가게 영업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건물주와 협의를 하는 중이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특히 그는 “지난 1월 노가리 골목에서 영업하는 또 다른 가게 사장이 가게가 있는 건물 지분 70%를 사들여 건물주가 됐다”고 주장했다. 을지OB베어 측은 시민단체와 협력해 이 가게 앞에서 항의시위 등을 계속 벌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