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부친 이주완씨. 이씨는 딸의 군번줄을 목에 걸어 지니고 다닌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98년생 고 이예람 중사는 공군 20전투비행단(20비)에서 5년간 근무하며 총 3번의 추행을 당했다. 모두 회식자리에서다. 한 번은 당시 20세였던 이 중사에게 스물다섯 살 많은 준위가 갑자기 뒤에서 다가가 팔짱을 꼈다. 회식이 끝나고 이동하는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준위는 1분간 팔짱을 끼고 있다가 풀었지만, 이 중사는 사건 직후 지인에게 “딸도 있는 사람이, 몇 마디 안 나눠 본, 한참 아빠뻘이 갑자기 와서 팔짱을 끼니까 진짜 온몸에 소름이…. 진짜 너무 모욕적이다”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이 중사가 속한 부서의 장을 맡고 있던 준위가 그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했다. 부대 인근의 유흥주점에서 회식하며 노래를 부르던 중, 준위는 이 중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함께 자리에 있던 장모 중사는 뒤에서 이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성추행 장면이 담기지 않았지만, 이 중사는 준위가 자신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겼다고도 말했다.

같은 부대의 장 중사는 지난해 3월 2일 회식이 끝나고 하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중에 이 중사를 집중적으로 성추행했다. 허벅지, 엉덩이를 만지고 강제로 키스했다. 이 중사의 손을 가져다가 자기 성기에 문지르기도 했다. 이 중사는 “그만 만지면 안 됩니까? 진심으로” “장 중사님, 내일 얼굴 봐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거부했지만, 추행은 20여분 동안 이어졌다.

사건 직후 이예람 중사는 맞선임을 통해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지만, 진짜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동료’를 ‘신고’한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군 내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이 중사는 81일에 걸쳐 알게 됐다. 부대원들은 문제를 키우지 말라며 설득했고, 이 중사의 당시 남자친구를 통한 회유와 협박도 이어졌다. 군 경찰은 수사 시작도 전에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지시했고, 군검찰은 지난해 4월 7일 사건을 넘겨받고도 두 달 가까이 수사 개시도 하지 않았다. 이 중사는 이 기간에 세 번이나 유서를 썼다.

이 중사가 임계점에 다다른 건 제15특수임무비행단(15비)에서다. 피해 사실을 뒤로하고 새롭게 군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새 직장으로 향했지만, 여기서도 이 중사는 같은 부대 동료를 신고한, ‘걸핏하면 신고를 일삼는 여군’이라는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이 중사는 전속 간 지 나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군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photo 뉴시스

이 중사의 마지막 4일

주간조선은 지난해 8월 국방부 보통검찰부가 작성한 불기소결정서와 판결문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이 중사가 성폭력을 당한 후 전속 간 부대인 15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구성했다. 여기서 이 중사가 보낸 마지막 나흘의 시간에는 성폭행 피해자를 대하는 군대 내부 문화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충남 서산시(20비)에서부터 경기도 성남시(15비)까지 옮겨왔지만 이미 군 간부를 비롯한 부대원들이 피해자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간부들은 피해자를 ‘관련 언급만 해도 고소를 한다’며 예민하다고 몰아세웠다. 훈계 혹은 매뉴얼을 따랐다고는 했지만, 대대장 등 상사들은 피해자를 관심병사 취급하며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굴었다.

2021년 5월 17일 월요일. 다음날 첫 출근을 앞둔 정기 휴무일이었는데, 이 중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15비 대대장이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당시 이 중사는 휴가 후 격리를 마친 다음이라 규정상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는데도, 대대장은 “전속 올 때 PCR 검사를 받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 중사가 돼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다그쳤다. 심지어 이 중사는 전화를 받기 30분쯤 전 PCR 검사를 다 받은 상태였다. 이 중사는 ‘PCR 검사를 받은 후 다른 데 가지 말고 부대로 복귀하라’는 말을 듣고, 예정돼 있던 정신과 상담도 취소한 채 부대로 복귀했다.

같은 날 대대의 한 실장은 이 중사에게 지시를 내려 청원휴가 당시 날짜별, 시간대별로 어디에, 왜 갔는지를 모두 적어서 제출하도록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치료 및 상담을 위한 청원휴가가 60일가량 주어지는데, 코로나19를 이유로 당시의 상황을 일일이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 중사의 남편은 향후 군사법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신과 의원 등을 방문한 기록을 보내면서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다음날인 5월 18일 화요일. 이 중사의 첫 출근날이었지만, 간부들을 비롯한 부대원들은 이 중사가 ‘성 관련 불미스러운 일로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날 그는 19군데의 비행장을 돌며 각 부서의 간부들에게 전속 신고를 했다. 이때 그는 간부들이 ‘성추행당한 여군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자’는 식으로 자신을 대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고 아버지와 당시 남자친구 등에게 호소했다.

석가탄신일 다음날인 5월 20일, 초과근무를 하고 관저에 돌아온 이 중사와 부친 이주완씨는 전화 통화를 했다. 아버지 이씨가 주간조선에 밝힌 통화 내용이다.

“그날 저녁 딸한테 전화했는데 ‘아버지, 나 너무 피곤해’ 하더라. 그럼 내일 (만나기로 했으니) 만날 때 박카스하고 (비타민) 앰플하고 우루사랑 이런 거 잔뜩 사 가지고 가마, 했더니 ‘아냐, 피곤한 게 더 좋아.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야지’ 하더라. 피곤해도 잠을 못 자던 애였다. 괜찮다고, 차라리 피곤한 게 낫다는 말을 듣는데, 아 정말 미치겠더라고 이거.”

다음날인 5월 21일, 이 중사는 당시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오후 반차를 쓰러 갔다. 전날 대대장의 허가가 끝난 반차 보고를 받은 부대의 반장은 담당이 아님에도 ‘신고를 왜 제대로 안 하느냐’며 트집을 잡았다. 반장은 “전에 있던 너희 부대는 그런 식으로 했는지 몰라도 여기서는 원칙대로 보고하라”며 이 중사를 다시 대대장실로 데려가 신고 절차를 다시 밟도록 했다. 동사무소에서 당시 이 중사를 기다리던 부친 이씨는 당시 딸이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왔으며, “남 앞에서 잘 울지 않으려던 애가 눈물을 쏟으며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이 중사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야간근무를 나간 사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5월 26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이예람 중사 빈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차 가해’가 아닌 가혹행위다”

15비에서 이 중사가 받았던 가장 큰 부담은 이미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전 부대원이 알고 있다고 느낀 것이었다. 실제로 상당수의 간부가 이를 알고 있었고, ‘걸핏하면 고소를 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이 중사에 대해 얘기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중사 관련 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모 대대장은 15비 관계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기소됐지만,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20여명의 간부가 초대된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다음 주에 전입해 오는 여군 중사에게 20비 관련 일체 언급을 금지합니다.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전속 오는 것이니 당부드립니다”라고 적고 메시지를 삭제한 다음, 7명 간부 등이 모인 회의에서 다시 이를 언급했다. 회의에서 그는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친구가 온다. 그런데 서산이나 20비 관련 언급만 해도 고소를 할 정도로 상당히 트라우마가 크다고 한다. 나도 잘 모르지만, 성 관련된 일로 추정되니 이에 대해 어디 가서 언급도 하지 말고 적당히 둘러대라”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때 회의에 참여한 간부들은 “관련 언급만 해도 고소를 하려고 하면 뭐가 성격이 착한 것이냐, 이상한 것이지”라며 불편함을 표현했다.

대대장이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관련 사실을 에둘러 유포함으로써 이 중사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부대에 퍼지게 된 것이다. 이 중사는 생전에 “이런 사실이 퍼지고 본인이 ‘튕기기’를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튕기기’는 군 법령에는 위배되지 않으나 사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해서 다른 부대로 보내기 위한 행위를 뜻하는데, 성범죄 피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압박하는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지난 5월 25일 만난 부친 이주완씨는 이러한 ‘튕기기’ 정황에 대해 ‘가혹행위’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그게 다 2차 가해가 아니고 그냥 가해라고 얘기하면 안 되나. (언론에서도) 그렇게 불러줄 가능성은 없을까. 예람이 사후에 심리 부검을 해보니 15비로 전속 온 다음 자살 성향이 쭉 올라갔다. 어느 부분에서부터는 직접 가해라고 볼 수 있고, 여기 이 사람들이 한 행동 하나하나가 새로운 유형의 가해라고 볼 수 있다.”

2심에서 유족 측을 변호했던 강석민 변호사도 “아직 특검에서 밝혀진 바가 없어 섣불리 죄명을 붙이기는 어렵지만,정신적으로 괴롭힌 (일련의 행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혹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쏘아붙이고 괴롭힌 정황들이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초기 군 수사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고도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국방부 검찰단이나 이런 쪽에서 수사를 정확히 진행해줘야 하는데 (2차 가해 및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가 정확히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검에 진행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예람 중사 사건은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년여 만에 현재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한 준비기간 끝에 지난 5월 16일 안미영 변호사를 특검에 임명함으로써 다시 수사에 들어갔다. 현재 특검팀을 꾸리기 위한 준비 기간을 거치고 있는데, 특검에는 최장 100일의 수사기간이 주어진다. 안 특검 측은 사무실 등 준비가 끝나는 대로 언론 소통, 유가족 면담 등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특검은 지난 5월 25일 “여성을 포함한 3명의 특검보 후보자를 추천했다”고 밝히고 초동 부실수사를 한 담당자와 지휘부, 2차 가해 수사에 중점을 찍겠다고 말했다.

이 중사의 가족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는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딸의 빈소에 머무르며 여기서 숙식을 해결한다. 아직 장례를 치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에는 공군에서 규칙대로 3일 만에 빈소를 거두라고 안내했지만, 가족들이 반발하고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문재인 정부 당시 서욱 국방장관이 직접 빈소를 찾았다. 그 후 공군은 이예람 중사 빈소를 그대로 둘 수 있게 조치했다. 현재 이 중사의 시신은 냉동고에 안치돼 있다. 실제 기자가 장례식장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이 중사의 가족들은 아직 딸을 보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이 중사 부친과 모친은 애지중지하던 딸의 군번 줄을 아직도 목에 걸고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15비를 비롯한 2차 피해자들까지,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이다.

“무사안일에 폐쇄주의 만연한 군”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당시 15비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A씨는 지난 5월 25일 기자와 만나 “무사안일주의에 폐쇄적인 군 문화”가 ‘튕기기 문화’를 조성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 부대에서 제일 중요한 목표는 ‘문제 안 생기게 하는 것’이었다. 제일 중요한 게 조용히 그냥 넘어가는 거였다. 오히려 열심히 하는 사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문제가 생긴다. ‘이번 달도 잘 넘기자’는 게 업무 목표였을 정도다. 그런데 (이 중사가) 왔으니 간부들은 머리가 아팠을 거다. 워낙 폐쇄적인 조직이라, (사건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고 금방 퍼지고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성폭행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폐쇄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군대 문화는 수년째 변함이 없다. 지난 2016년 이미정·정수연·권인숙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펴낸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의 문제와 개선방안 연구’라는 보고서에는 이 중사가 겪었던 정황들과 비슷한 사례들이 담겨 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 및 신원에 대한 비밀 보장이 잘 되지 않는다’ ‘다 같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강한 군대에서 신고자는 ‘배신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신고 이후 보복성 괴롭힘도 빈번한데, 선임이나 상급자가 은밀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괴롭힌다’ 등이 적시돼 있다. 이 중사가 15비에서 당했다고 진술한 바와 비슷한 내용들이다.

A씨는 “아마 15비가 아니라 어느 군대에 가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15비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군 내부에 퍼져 있는 강압적 문화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양지영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김 교수는 “조직문화에 대한 점검과 개선 노력 없이 성폭력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하고 인력을 충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성폭력 사건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군대는 환영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얘기할 수 있도록 군 문화 개선과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예람 중사의 부친 이주완씨는 “딸의 희생이 계기가 되어 2차 피해, 집단적 괴롭힘에 대한 법적 선례가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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