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차가 교통법 위반했다” 올해 신고 300만건 넘을 듯
최근 경찰은 지난해 전국에 접수된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가 총 290만7254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고 발표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6.5% 늘었다. 올해 6월까지 경찰청의 ‘스마트국민제보’앱에 접수된 신고만 140만 건을 넘어, 올해 300만 돌파가 확실시된다.
교통위반을 신고할 경우 별도로 받는 포상금은 없다. 그럼에도 최근 ‘교통 위반 신고’에 적극적인 이들은 주로 2040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고 내용을 공유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댓글에는 ‘멋있다’ ‘신고는 무조건 따봉’이라는 등 칭찬하는 반응이 다수다.
이들은 왜 특별한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에 이렇게 열심인 것일까. 설문조사와 개인 접촉 등을 통해 그들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을 탐구했다.
◇신고하는 마음 “계도하고 싶다” “응징하고 싶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한문철 변호사를 통해 ‘한문철 TV’의 라이브에서 설문 조사를 해봤다. 방송 시청자 중 ‘교통위반 신고를 해봤다’는 시민 100명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응답자의 과반 이상이 ‘교육 및 계도’(65%)가 목적이라고 답했다. 교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신고한다는 것이다. ‘감정적 응징’(20%), ‘간접 처벌’(15%)이 뒤따랐다. 적지 않은 이들이 신고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신고 경험이 소개되면서 신고 방법이 알려지고, 신고자들이 ‘참교육’을 통해 쾌감을 느낀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행처럼 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9만원짜리 상품권’ 보내드렸다” “금융치료 해드렸다”
신고자들 사이에 유행인 ‘상품권’이라는 표현은 ‘감정적 응징’이라는 요인과 맞아떨어져 보인다. 신고위반자가 받은 벌금 통지서를 두고 ‘상품권’이라 표현한다. “9만원짜리 상품권(티켓) 보내드렸다”는 말은 위반금 9만원에 해당하는 사례를 신고했다는 뜻이다. 이를 ‘금융치료’라고도 표현한다. 일종의 ‘정의감’ ‘응징’ ‘놀이’가 뒤섞인 모습이다. 자동차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도 비슷하다.
“요즘 취미로 교통 법규 위반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뜻은 없어요. 재밌으니까 하는 겁니다. 게임이나 골프처럼 그냥 재밌어서 해요. 국고(國庫)도 쌓이고 도로도 깨끗해지는데 이것만큼 건전하고 유익한 취미가 또 있나요”(테슬라 코리아 클럽)
“다른 사람들이 공익 신고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감명받아, 짬 날 때마다 (교통법) 위반 사실을 신고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회사 복귀 중에 오토바이 운전자 2명이 헬멧도 안 쓰고 신호를 위반했길래, 바로 촬영하고 신고했습니다”(보배드림)
◇아무도 안시킨 신고, 대체 왜 할까
커뮤니티에 ‘신고글’을 올린 9명에게 연락해 신고 동기를 물어봤다.
“15년 전 동생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저 역시 신호 위반, 불법 좌회전 하는 차들 때문에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꾸준히 신고를 한다. 한 달에 7, 8회쯤 하고 있다.”
“순서를 지키면서 기다리는 차들이 많은데 앞에서 끼어드는 ‘얌체족’들을 신고하는 게 시작이었다. 신호 위반,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 등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은 다 신고하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쳤으니 다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신고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은 순서 지키면서 가는데, 너는 얍삽하게 왜 앞에서 끼어드냐? 왜 편법으로 얌체짓을 하냐 이런 마음이다”
“만족감이나 성취감 공익목적 그런 건 별로 없다. 위반한 사람이 금융치료라도 받아 자기가 잘못한 걸 인지시키고 싶어서 한다.”
“끼어들기, 중앙선 침범 같은 위반의 경우, 내 차로 막으면서 항의하는 행위보다 공익신고가 더 효과가 있다.”
“교통환경 개선이 목적이다.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이 안전하게 통행하게 하도록.”
“100번 신호위반 하는 사람이 벌금 내는 건 1, 2회에 불과하다. 신고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교통안전을 위해 귀찮아도 하고 있다.”
◇권력감, 복수심, 혹은 계몽의식?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을 어긴 사람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힘으로 타인을 벌줬다는 일종의 ‘권력 우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신고를 당한 이들은 ‘감시 받는 느낌’ 을 호소한다. 직장인 김모(35)씨는 “초보 운전자라 실수할 때가 많은데 한 달에 2~3건씩 벌금 통지서가 날아온다”며 “그때마다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공익 신고가 폭증하면서 교통 경찰들의 업무는 가중되고 있다. 신고에 일일이 답하고 처리 결과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우, 하루 많게는 100건의 신고가 들어오지만 담당 경찰관은 3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들어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지 않거나, 잠시 주정차한 오토바이 등 사소한 것까지 신고가 들어온다”며 “경찰은 위법이 명확한 경우만 처벌하는데, 신고인 입장에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악성 민원을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